조조(曹操, 155~220)는 위(魏)나라 건국의 기틀을 마련한 삼국지의 핵심 인물이며, 유비와 상반된 인성과 이미지를 가지고, 대중에겐 간웅(奸雄 = 간사, 교활한 영웅)으로 취급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어렵게 세운 위나라는 안타깝게도 겨우 45년만에 멸망하게 된다.
구체적으로는 200년~265년 사이인데, 필자는 그 과정에서 의문이 있는 기록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에 그에 따른 의문을 풀어 새로운 가설을 주장하고자 한다. 워낙에 방대한 자료다 보니, 단편에 모두 담지 못하고 차례대로 시리즈 형태로 블로그에 글을 남기려고 한다.
자. 냉정하고, 서슬 퍼런 위왕 조조(魏王 曹操)를 한번 만나러 가보자.
너무 걱정마, 그의 눈에는 우리가 보이지 않으니깐. 간다. 1.
서기 200년 피바람의 서막 아래는 그 유명한 '의대조(허리띠 안쪽에 숨긴 황제밀서)'사건이다. 196년 7월 헌제(본명 유협)는 이각, 곽사에게서 벗어나 조조의 보호를 받고 도읍을 허도(허현)으로 옮겼다. 그러나 조...
원문 링크 : [위나라 건국과 멸망] 사라진 밀서 - 1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