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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 호모데우스 읽기1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 호모데우스 읽기1

처음 읽을 때 정보처럼 다가오던 글은 두 번째 읽을 때는 책을 덮으며 다시 생각하게 한다. 같은 문장을 되풀이 읽고 손가락으로 줄을 짚는 행위가 따라오지만, 통계가 먼저 던지는 질문은 남아 있다. “역사상 처음으로, 오늘날에는 너무 적게 먹어 죽는 사람보다 너무 많이 먹어 죽는 사람이 더 많다. 늙어서 죽는 사람이 전염병으로 죽는 사람보다 더 많다. 그리고 군인과 테러리스트와 범죄자에게 살해당하는 사람보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더 많다.” 이 사실에서 한 가지 질문이 도출된다. 인류가 굶주림과 질병과 전쟁을 어느 정도 손에 쥐었다면, 그다음에 무엇이 의제의 맨 앞에 오를 것인가. 건강하고 풍족하며 평화로운 세상에서 무엇을 행해야 하는가. 이 질문 앞에서 선택이 갈린다. 그냥 지나치는가, 아니면 책을 덮는가. 이 질문은 한 번 읽으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저자의 답은 불멸, 행복, 신성의 세 가지다. 늙음과 죽음을 정복하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호모 사피엔스를 호모 데우스로 이끄는 일. 처음에는 실리콘밸리의 공상처럼 들리지만, 죽음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그 공상은 현실로 바뀐다. “현실에서 인간은 검은 망토를 두른 형상이 어깨를 두드려서 죽는 것도 아니고, 신이 명령해서 죽는 것도 아니며, 죽음이 어떤 거대한 우주적 계획의 본질적 부분이어서 죽는 것도 아니다. 인간은 언제나 어떤 기술적 결함 때문에 죽는다.” 심장이 멈추는 이유는 산소 부족, 암세포의 확산은 유전자의 오작용, 폐의 세균은 누군가의 재채기로 인한 결과라는 식의 기술적 문제이며, 모든 기술적 문제에는 기술적 해법이 있다. 이 대목은 병원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의사가 사망을 병명으로 말하던 자리에서 죽음을 다루는 방식이 이미 우리 일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진료실과 장례식장, 뉴스 자막에서 들려오는 그 단어들은 저자의 문장을 멀지 않게 만든다. 우리가 죽음을 어떤 단어로 부르는지가 곧 현실의 한 부분임을 보여 준다.

세 번째 문장은 잔디밭으로 넘어가는데, 이 부분에서 가장 멀리까지 이끈다. “당신은 유럽의 공작들과 자본주의 거물들과 심슨 가족이 당신에게 물려준 문화적 짐을 떨쳐낼 자유가 있다.” 잔디밭은 아름다워서 심는 것이 아니라 중세 귀족의 권력의 표시였고, 산업혁명이 만든 중산층의 의무가 되었으며, 우리도 그것을 자연스러운 취향으로 여겨 왔다.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 역시 과거를 반복하기보다는 과거에서 풀려나기 위함이다. 이 대목에서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적힌다. 결혼은 죽을 때까지 하는 것, 직업은 젊을 때 배워 평생 하는 것, 노년에는 다음 세대에 자리를 비키는 것. 그러나 수명이 백오십 년에 이르면 이 전제들이 무너진다고 말한다. 아직도 흔들리는 목록들이 있다. 자연스럽다고 여겨온 것들 가운데 잔디밭과 다르지 않은 것들이 남아 있다. 저자는 모든 예측이 예언이 아니라고 못 박고, 예측의 핵심은 적중이 아니라 지금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 다시 논의하게 만드는 데 있다고 본다. 이 글은 미래에 관한 글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에 대한 자각을 요구한다. 읽는 이의 몫으로 남는 질문은 어디에서 덮게 될지의 여부가 아니다. 읽는 이는 스스로를 바라보며 어떤 길을 택할지 생각하게 된다. 이 질문은 읽는 이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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