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드라마 〈배를 엮다〉에서 연애 항목에 닿는 미도리의 말을 통해 사전이 가진 한계와 언어의 작동 원리가 드러난다. 토끼와 사람의 차이에서 시작된 이성의 정의는, 사람들이 사전에서 이성을 찾으며 형성되는 편견을 드러낸다. 토끼는 사전을 찾지 않으니 자신이 토끼임을 상처받지 않지만, 사람은 자기가 누구인지 밝히려 말의 사전까지 펼친다. 그러나 펼친 말 속에 자신이 없으면 상처받게 된다. 문제의 핵심은 '연애'의 뜻풀이에 박힌 이성끼리라는 네 글자다. 이성이 아닌 상대를 깊이 사모하는 이가 사전을 찾아보면 거기에 적힌 정의가 등장한다. 사전은 그를 탓하지 않았으나, 빼놓은 사실이 탓으로 번진다. 이 자리에서 미도리의 더듬은 말은 자기가 누구인지, 무엇을 모호하게 가르는지에 대한 의문을 남긴다.
니체의 지적이 이 대목에 깊이 맞닿아 있다. 우리가 어떤 것에 이름을 붙일 때 그 이름이 본질을 옮겨 적는가에 대해 의심을 제기한다. 자극은 신경을 거쳐 그림이 되고 그림이 소리가 된다. 옮길 때마다 다른 영역으로 넘어가며, 그 사이엔 필연이 없다. 굳어진 약속만이 남을 뿐이다. 따라서 단어는 굳은 은유다. 한때 살아 있는 비유였던 것이 너무 자주 쓰여 닳아버린 동전처럼 무늬를 잃어버린다. 이성끼리라는 표기가 한 사람을 빼놓을 때도 마찬가지다. 마쓰모토 선생의 말처럼 동성애나 양성애를 사전에서 몰아내려는 의도가 아니라, 그것이 오래동안 통용되어 무늬를 잃었을 뿐이다. 무늬를 잃은 동전은 누구에게서 새겨졌는지 묻지 않는다. 그냥 손에서 손으로 넘어간다.
언어의 작동 방식은 이처럼 두 얼굴을 가진다. 한편으로는 사람을 가두고, 다른 한편으로는 말로 옮겨지지 못한 것을 붙들고 꺼뜨리기도 한다. 사전은 시대를 만들지 못하지만, 한 사람이 자신에게 이르는 길은 만든다. 미도리의 분노는 옳고, 무엇을 적느냐가 존재를 규정한다는 점을 환기시킨다. 이름 붙일 힘을 쥔 자가 가치를 새기고, 새겨진 가치는 곧 자연처럼 여겨진다. 새 말이 생겨도 십 년은 살아남는지 지켜본 뒤에 들여와야 한다고 마쓰모토 선생은 말한다. 필요했던 것은 감정론이 아니라 근거였다고 하지만, 그 근거 역시 더듬는 입에서 나와야 했다. 감정과 근거는 적이 아니었고, 불꽃과 그것을 감싸는 손이 서로를 지탱했다. 이성은 연애를 담기에 너무 좁고 헐거워서, 특정한 두 사람으로 바꿔보는 손이 같은 일을 한다. 이로써 감정과 근거가 서로를 살리며, 언어의 미세한 틈새가 사람을 해방시킨다. 결국 언어는 굳은 곳에서 사람을 구하고, 더듬는 입에서 사람을 해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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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링크 : 언어는 우리에게 어떻게 작동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