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1월 6일 강의의 전반부는 무엇을 뒤집으려는 시도인지를 먼저 잡고 읽어야 한다. 서양 철학이 ‘너 자신을 알라’에서 시작했다고 배운 독자에게 푸코는 이 시작이 정말 맞는지 질문한다. 시작이 아니라고 말하고, 그 문장이 실용적 권고였다고 밝힌 뒤 다른 개념을 꺼낸다. 바로 ‘자기 배려’다. Gnôthi seauton은 epimeleia heautou의 보다 일반적 범주 안에서 특정한 적용으로 등장한다는 관계 정리를 제시한다. 따라서 자기 인식은 자기 배려에 종속된다는 점이 핵심이다.
강의는 소크라테스를 읽는 방식의 전환을 촉구한다. 우리가 아는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를 외친 인물이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을 길에서 붙잡고 “당신 자신을 돌보라”고 말한 자였다고 지적된다. 재산과 명예를 돌보되 영혼은 돌보지 않는 사람들을 깨우는 예로 들린다. 자기 배려는 한 번의 깨달음이 아니라 삶 전체에 박혀 있어야 하는 침이며, 신체와 실존 속에 이식되고 항구적으로 작동하는 원리로 제시된다.
그 다음으로 1천 년의 흐름이 어떻게 한 줄기로 이어지는지가 설명된다. 소크라테스의 눈으로 본 뒤, 고대에서 헬레니즘, 로마, 초기 기독교 금욕주의까지의 흐름이 왜 하나의 흐름으로 읽히는지 보게 된다. 마지막 3분의 1은 더 어렵다. 왜 자기 배려가 잊혔는지 묻고 데카르트의 순간이 그 전환점임을 제시한다. 철학과 영성을 갈라 보며, 진실은 주체를 구원하지만 주체는 진실의 능력을 가지지 않는다는 근대의 의식이 성립하는 순간이 시작된다고 설명한다. 옛날에는 진실이 구원을 주었으나 지금은 진실이 스스로를 구원하지 못한다는 통찰이 자리한다. 둘의 순서를 먼저 세우고 소크라테스를 새로운 눈으로, 데카르트의 순간에서 토대의 붕괴를 따라가면 된다. 푸코가 제시하는 예외들—아리스토텔레스의 예외와 영지주의—은 단순한 부속이 아니라 자기 논지의 경계를 가르는 장치로 작용한다. 이런 예외들이 왜 예외인지를 되짚을수록 1천 년을 한 줄로 꿰는 가설의 정교함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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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링크 : 푸코 주체의 해석학 읽기 - 첫째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