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는 참교육이라 불리며 한 아이의 죽음과 그를 둘러싼 웃음과 폭력을 통해 집단의 윤리를 비판한다. 위험을 감수하는 어른의 개입 없이도 아이들은 줄을 서고 밥을 받는 행위를 통해 가해가 반복되는 구조를 확인한다. 강한 쪽이 옳다고 여겨지는 교실의 풍경에서 어제까지 약한 이를 짓밟던 아이들은 오늘도 같은 방식으로 되갚고자 하는 힘에 이끌린다. 줄세우기와 밥의 의식은 단순한 생존 욕구를 넘어 권력의 체계에 편입되며, 가장 큰 소리를 지르는 자가 주도권을 쥐게 한다.
급식실의 웃음은 두 가지를 남긴다. 하나는 강한 쪽의 정의가 유지된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안전한 편에 서야 한다는 의식이다. 어른의 촬영 요청은 시험의 성격을 띠며, 망설임은 양심 때문이 아니라 어느 줄에 서야 굶주림을 피할지 계산하는 몸의 반응이다. 무관심과 웃음은 같은 출발점에서 비롯되며, 두려움 없이 생각하는 대신 줄에 서는 행위가 습관화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가해자 쪽이나 구경꾼 쪽으로 움직이며, 줄 서기의 행위는 습관이 되어 강한 권력 앞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밥을 놓고 벌어진 사회적 작용은 가장 단순한 허기를 복종의 대가로 바꾼다. 그러한 몸은 옳은 것을 묻기보다 어디에 서야 굶주림을 면하는지 계산하는 존재로 길들여진다. 두려움은 빠르게 작동하고, 한 끼면 충분하다. 그렇게 길들여진 몸은 다음에도 강한 쪽으로 자동적으로 줄을 선다. 그것이 교육이 전달하는 단 하나의 교과가 되었다. 어른의 말처럼 반성은 머리가 아닌 몸으로 이뤄진다고 느껴지지만, 머리를 건너뛴 반성은 결국 실제로는 반성이 아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스스로 헤아리지 못한 채 맞기 싫어 고개를 숙이는 모습은 다시 더 큰 힘 앞에서 굴복하게 된다.
교육은 혼자 있을 때 무엇이 옳은지를 묻는 힘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남는다. 옥상으로 떠밀려가려던 아이를 도울 수 있는 힘이 먼저 있어야 한다는 요구가 남고, 보는 눈이 없어도 혼자 멈춰 설 수 있는 용기가 중요하다. 그날 급식실에서 벌어진 일은 그 힘을 빼앗아 가버렸고, 무섭고도 굴복하는 법을 가르치며 함께 폭력을 미화하는 분위기를 남겼다. 가해자는 바뀌었지만 약한 자를 눌러 웃는 행위는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다. 강한 힘 앞에 굴복하는 법을 먼저 배운 아이가 자라면 어떤 모습이 될지, 그 가능성에 대한 공포가 남는다.
#
드라마참교육
#
참교육
#
참교육1화
#
참교육드라마
#
참교육리뷰
#
참교육해석
#
참교육후기
원문 링크 : 참교육의 불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