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시 『직하학 연구』 리뷰 1. 이름 없는 학자들의 광장 기원전 4세기 중반, 제나라 임치(臨淄)의 직문(稷門) 밖에는 세상에서 가장 시끄러운 학교가 있었다.
직하학궁(稷下學宮). 제 선왕(宣王)은 천하의 학자들을 불러 모아 "상대부의 녹봉을 주고 대궐 같은 집에서 살게 했다."
가장 번성할 때 선생과 학사의 수가 "수백 수천 명"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한 방향을 보지 않았다.
제나라 본토의 순우곤·전병·윤문 옆에 조나라의 신도, 송나라의 송형, 연나라의 추연이 앉아 있었다. 저마다 자기 나라의 오래된 말을 들고 왔다.
무엇이 도(道)이고 무엇이 법(法)인지,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고 군주는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뜰 안에서 논쟁이 멈추는 날이 없었다. 그 시끄러움이 중요하다.
직하의 잡다함은 결함이 아니라 조건이었다. 서로 다른 곳에서 온 사람들이 같은 뜰에 앉아야 비로소 자기가 들고 온 것의 한계를 보게 된다.
충돌이 없으면 통합도 없다. 그 충돌 한가운데 서 있던 것이 ...
원문 링크 : 음양과 오행이 만나던 날 - 직하학 연구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