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희는 드라마 속에서 주목과 자기 정체성의 욕망을 둘러싼 관계를 통해 욕망의 방향성을 드러낸다. 남편과 딸을 떠나 커리어를 밀어주려 한 선택은 타인에 대한 욕망이 자신만의 주제가 되려는 욕망으로 작동했음을 보여준다. 세련되고 특별해 보이려는 시온이라는 이름은 그런 욕망의 투사였고, 결국 딸은 이를 거부하고 은아라는 낙낙하고 조용한 이름으로 스스로를 재정의한다. 은아는 사랑했던 마재용에게 자신의 재능을 다 주고 싶었지만, 그것이 독차지되자 수동적으로 남아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필명 뒤에 숨어 오픈하고 싶던 마음을 눌러 왔고, 타인의 의식 속에서 자신의 욕망이 다친 듯한 흔적이 남는다.
오정희의 말은 욕망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욕망의 방향을 확인하고 그 방향이 타인과 어떻게 얽혀 있는지 묻는 것이다. 순자의 화성기위 관점으로 보면 욕망은 본성의 변화이자 사회적 존재를 형성하는 힘이다. 그러나 오정희의 욕망은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만 존재를 확립하려 하면서도, 그 방향은 늘 자신에게로만 향한다. 은아의 욕망은 타인을 향했고, 그 과정에서 다친 반면, 오정희의 욕망은 남편과 딸을 포함한 주변으로 확장되지 못하고 자기 자신에게 머물렀다. 따라서 이 장면에서 더 가짜인 것은 은아가 아니라 오정희일 수 있다. 은아는 이름의 선택으로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정의했고, 타인을 통해 욕망이 다치거나 드러나는 상황에서도 자기 존재를 지키려 애쓴다.
오정희는 “그냥 오픈해. 내가 영실이다. 내가 오정희 딸이다”라고 말하며 딸의 세상에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말은 은아를 위한 표현처럼 들리지만 실은 오정희 자신이 원하는 바를 드러내는 선언이다. 딸이 자신의 욕망의 도구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시온을 거절한 것은 은아의 이름을 밝히고 자신의 욕망이 드러나는 순간을 피하려는 시도로 해석되기도 한다. 순자의 질문은 욕망의 방향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자리를 잡는가에 있다. 오정희의 욕망은 여전히 자신을 향하고 있고, 은아의 욕망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다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욕망을 지니고 있으며, 그 욕망의 방향이 결국 사람의 모양을 만든다는 점이 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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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링크 : 욕망은 죽이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