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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는가, 아니면 휘말리는가

 나는 하는가, 아니면 휘말리는가

담배를 피우는 아버지와 그것을 바라보는 딸의 순간은 의지의 주체를 둘러싼 전통적 해석에 의문을 던진다. 담배는 외부의 대상이 아니라, 연기가 몸 안으로 들어오고 혈액으로 스며들며 다시 자신을 향해 담배를 찾게 만드는 작용으로 작용한다는 인식이 나타난다. 이때 행위의 주어는 단순히 능동적으로 작용하는 주체가 아니라, 행위가 일어나는 장소로 변모한다. 고쿠분 고이치로가 지적한 중동태의 사태가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의지는 행위자를 내세우고 그러나 실제로는 행위가 장소를 지나면서 주어를 변형시키는 과정으로 작동한다. 설득의 예에서도 동일한 흐름이 보인다. 설득당하는 과정에서 나 자신이 점차 기울어지며 생각이 바뀌는데, 이때 두 전통적 태도는 벗겨진다.

중동태의 관찰은 언어의 뼈대를 흔든다. 능동태와 수동태의 이분법이 사라진 자리에 들어선 것은 의지라는 개념이며, 기독교적 해석이 덧씌워지며 의지가 강한 주체를 전제하는 사고가 자리 잡았다. 이로 인해 공부나 노력, 가난의 원인을 의지의 부족으로 돌리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아버지의 손이 멈춘 순간 역시 의지의 작용으로만 설명할 수 없게 된다. 딸의 한 마디와 오랜 저녁들이 아버지의 내면으로 들어오고, 그 모든 것이 다가와 담배를 멈추게 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결국 행위의 결과가 행위자에게 되돌아오는 경향에서 벗어나, 관계 속에서 행위가 만들어낸다는 인식으로 확장된다.

권력은 억압이 아니라 행위를 만들어내는 힘으로 이해된다. 푸코의 시야에서 가정의 구조나 교실의 관계는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힘으로 작동한다. 아이가 스스로 공부에 몰입하게 만드는 것은 사랑의 표현이 아니라 강력한 권력으로 작동하는 관계의 결과일 수 있다. 이때 책임은 의지가 아닌 응답으로 이해된다. 길을 걷다 노인을 보고 멈추지 않는 행위는 법적 처벌을 받지 않을지라도 책임의 여부를 묻는 기준이 된다. 응답하지 않은 선택이 쌓여 결국 특정한 인물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면, 아버지의 손이 멈춘 근원은 의지, 딸의 말, 그리고 서로의 오랜 저녁들에 의해 형성된 모든 요소의 합이다. 담배를 끊은 것은 아버지지만, 그것은 혼자의 힘으로 성취된 것이 아니다. 휘말려 들어가며 행위를 하게 되고, 그 휘말림 속에서 어떤 것에 응답할 때 비로소 존재가 드러난다. 결국 관계 속에서 행위가 만들어내는 힘이 주체의 자리를 구성하고, 응답의 결이 굳어지는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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