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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그 한마디 앞뒤로

 미안해, 그 한마디 앞뒤로

소설은 한 사람의 목소리로 진행되지 않는다. 동호가 있고, 정대가 있고, 은숙이 있고, 선주가 있다. 죽은 정대의 혼의 목소리도 있다. 각자는 그 열흘을 다른 자리에서 통과했고, 다른 것을 두려워했고, 다른 것을 선택했다. 한강은 그들을 하나의 집합으로 묶지 않는다. ‘광주의 희생자들’이 아니라 동호와 정대와 은숙과 선주라는, 각각의 사람들로. 국가 폭력이 지운 것을 소설이 하나씩 되불러낸다. 말하고 행위함으로써 자신이 누구인지를 드러내는 공간, 각자가 고유한 존재로 보이는 공간 — 아렌트가 ‘나타남(appearance)의 공간’이라 부른 것을 한강은 문장으로 다시 열었다.

소설 안에서 살아남은 두 사람, 은숙과 선주는 반대 방향으로 걷는다. 은숙은 기억한다. 취조실에서 당한 것을, 그 시절 함께했던 사람들을, 그들의 얼굴을. 선주는 멀어지려 한다. 광주의 기억, 고문의 기억, 그것들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놓았는지. 선주는 그 모든 것에서 달아나는 방식으로 살아남았다. 고문의 경험은 방사능 피폭과 비슷하다고, 소설 안에서 누군가 말한다. 한강은 그 말을 설명하거나 교정하지 않고 그냥 놓아두었다. 기억하는 자와 달아나는 자 중 누가 옳은지를 묻지 않는다. 두 사람 모두 그 열흘 안에 있었고, 그 이후를 살아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애도는 한 방향으로만 오지 않는다. 아렌트가 용서를 통해 열고자 했던 새로운 시작은, 이 두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그 시간을 통과하고 난 뒤에야 가능해진다. 그 뒤가 아직 오지 않았다. “야, 미안.” 그 한마디가 놓이기 전에, 서로를 같은 자리에 있는 사람으로 대하는 시간이 먼저 있었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그 한마디도 없었다. 용서는 거기서 시작되었고, 그 아래로 더 내려가야 하는 자리가 있었다. 죽은 자들의 이름이 불려야 하고, 그 죽음이 공적으로 슬퍼해져야 하고, 살아남은 자들의 목소리가 공동체 안에서 자리를 얻어야 한다. 『소년이 온다』는 그 시간을 짓는 소설이다. 용서를 완성한 소설이 아니라, 용서가 가능해지기 위해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 것들을 문장으로 쌓는 소설. 동호와 정대와 은숙과 선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 그들이 그 열흘을 어떻게 통과했는지를 증언하는 것, 그 증언이 우리에게 닿도록 하는 것. 한강은 그 시간을 소설로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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