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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을 길잡이로 삼아

 해골을 길잡이로 삼아

예순네 살이라는 나이를 오래 생각했다. 지금도 젊은 나이가 아닌데, 당시 기준으로는 거의 일흔 노인과 다름없는 나이였다. 그 나이에 율장이 없다는 이유 하나로 장안을 떠난다는 것을, 그저 납득할 수가 없었다. 불경을 번역하는 사람이 있으면 되고, 필사하는 사람이 있으면 되고, 기다리면 언젠가 들어올 것이다. 그러나 그가 고른 것은 기다림이 아니었다. 서역으로 가는 것, 아무도 간 적 없는 천축으로 가는 것이었다. 개탄이라는 한자를 나는 자꾸 들여다봤다. 통분하다, 탄식하다. 그런데 법현은 탄식한 다음 장안을 떠났다.

우응순 선생님이 이 대목에서 이렇게 말했다. 중앙아시아와 인도에서 온 전법승들이 불경을 들고 와서 이것저것 갖다 들이밀었는데, 중국의 엘리트 승려들이 보니까 번역이 들쭉날쭉하고, 원본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겠고, 무엇이 맞는 법인지 알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결론이 이거였다. 안 되겠다, 우리가 직접 가봐야겠다. 장안에서 함께 떠난 도반은 여럿이었다. 혜경, 도정, 혜웅, 혜응, 그 외에도 몇 사람이 더 있었다. 그러나 그들 중 대부분은 길 위에서 돌아오거나, 길 위에서 죽었다. 어떤 이는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어떤 이는 파미르 고원을 넘다가, 어떤 이는 인도의 기후를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13년이 지나 장안으로 돌아온 것은 법현 혼자였다. 그때 그의 나이 일흔일곱이었다. 예순넷, 13년, 일흔일곶. 이유가 너무 작다. 그런데 그 생각을 계속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뒤집힌다. 어쩌면 이유가 작아야 출발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유가 너무 크면 사람은 그 앞에서 먼저 선다. 자신이 이름 붙일 수 있는 크기의 결핍, 자신이 손으로 가리킬 수 있는 자리의 빈 곳 — 그것이 오히려 발을 뗀다. 아니면, 처음부터 율장이 이유가 아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율장은 이름이었고, 가야 한다는 것이 먼저였을 수도 있다.

사막에서 죽은 자가 산 자를 안내한다. 불국기에는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는 장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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