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유독 길게 느껴지는 날은 아침부터 체력과 정신이 탈탈 털리는 느낌으로 시작된다. 다리의 아픔과 머리의 피로가 쌓인 채 집에 도착하지만, 쉬려 하기엔 일상의 무게가 다시 다가온다. 빨래통에 쌓인 옷을 세탁기에 넣고, 싱크대의 그릇을 정리하는 일들이 먼저 밀려와야만 잠시 숨 쉴 수 있다. 게다가 엄마와 공부하던 아이도 무엇이든 제자리를 벗어나 버린 듯 소란스러운 날이다. 부부가 아이를 키우는 일의 가장 큰 어려움이라 여길 정도로, 아내가 훨씬 많은 부분을 해결해 주고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이 또한 버티기 힘든 날이 있다.
그날은 조용히 자신의 할 일만 끝내고, 바람 빠진 풍선처럼 집의 유일한 베란다 빈백 소파에 털썩 기대었다. 책을 펴 읽고 몸과 머리를 식히려 했지만, 오늘따라 아이의 입은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 그래도 인사는 필요해 들려오는 아이의 목소리를 기다리자, “오늘은 아빠가 아닌 거 같아”라는 말이 흘러나온다. 이유를 묻자 아이는 “평소 아빠의 목소리는 재밌는데 오늘은 달라 보인다”라고 했다. 그 한마디에 스스로 바깥의 피로가 그대로 집 안으로 들고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그 감정과 짜증이 온몸에 묻어 있었음을 느낀다.
베란다의 좁은 공간이 집 안에서 유일한 소파가 되는 상황은, 알지 못하는 표정과 인상을 남겨 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스스로도 놀랍게 한다. 집에 들어오기 전에 샤워하듯 밖에서 먼저 털어 내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현실은 그날도 여전히 여유롭지 않다. 현명한 아내와 영리한 아이가 건드리지 않았다면 차마 지나갈 수도 있었던 순간들이었을지도 모른다. 분위기 신호등이라도 집에다 하나 만들어 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밖에서 쌓인 짜증이 들어오면 초록 신호를 주지 않으려는 마음이 든다. 현관에 두고 들어오게 할 수 없으니, 중간 어딘가에 그런 신호를 마련해야 할지 고민이 남는다.
원문 링크 : 오늘은 아빠가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