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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네모네, 크로커스 개화

 아네모네, 크로커스 개화

슬픈 3월에 순백의 눈부신 꽃이 피었습니다. 아네모네 갈릴리 화이트를 보며 저는 빛의 중요성을 다시 느꼈습니다. 블루와 레드는 아직 피지 않았고, 지난해엔 키다리 아가씨처럼 자란 모습이 오늘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때 꽃대를 보고 놀랐던 것은 아네모네 탓이 아니라 빛이 부족한 곳에 두었기 때문이었어요. 해를 보겠다고 목을 빼다 키다리가 된 것이었습니다. 올해는 식재 후 빛이 잘 드는 곳에 두었기에 꽃도 빨리 피고 키도 많이 크지 않았습니다. 제 말을 믿으셔야 합니다. 아니면 두 곳에 나눠 심고 각각 다른 장소에 두어 한 녀석을 꺽다리로 만들어 보셔야 제 말을 믿게 될지도 몰라요. 아침엔 오므렸다가 해가 깊게 드는 나른한 낮엔 활짝 펴고 지내요. 레드는 지난해 베란다에서 수확한 것이고 블루와 화이트는 구매해 심은 것이에요. 크로커스는 두 배로 반가워요. 지난해 수확한 구근으로 심었는데 어김없이 피어 주었습니다. 크로커스는 가장 추운 곳에 둔답니다. 추위에 매우 강하니까요. 이 아이는 이렇게 애간장을 녹이다가 질 때는 어느 순간 팍 고꾸라져 버렸어요. 그래서 꽃을 오래 잡고 있으려고 가장 추운 곳의 반양지에 두었답니다. 정원은 평화롭습니다. 겨울이 지나고 해가 길어지고 개구리들이 깨어나고 구근식물이 꽃을 피웁니다. 그러나 진정한 정원의 시간은 가장 마지막에 가장 평온한 날에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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