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천막 예배로 마음의 위안을 받다 송관호 수기, 김종운 편저 2월 17일 무렵이 되었다.
수많은 포로가 고현리 쪽에서 수월리로 이동을 하였고 부산에서도 옮겨왔다. 나는 시간이 빨리 흘러갔으면 하는 마음에서 일하면서 오직 진달래꽃 봉오리가 커지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하루해는 길기만 했다. 포로들은 원래 일반인들과 접촉하거나 대화를 할 수 없었다.
간혹 일하는 장소에서 만날 수 있었지만 그런 기회를 얻기는 여간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요행으로 간혹 외부 소식을 듣기도 하였다.
나는 작업장에서 피난민들과 함께 일할 기회가 있었다. 한 사람이 말하길 두 달 전 흥남서 후퇴할 때 많은 인파 속에서 가족을 잃어버리고 본인만 여기에 왔는데 자식들이 다른 배로 월남했는지 못했는지 전혀 알 길이 없다며 “흥남 부두에서 마지막 철수 때 그 아비규환의 비참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라고 말했다. 흥남부두 피난민 철수선들 네이버지식백과 자료 흥남 부두에서는 수많은 인파가 배를 타지 못해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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