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에게 '언어'는 세계를 비추는 거울이어야 했다. 즉 '말할 수 있는 것'의 영역은 오직 사실적 명제들로 엄격히 제한된 것이다.
예컨대 "빨랫감이 세탁기 안에 있다." 따위의 문장들이다.
이 도면은 언어가 세계의 논리적 구조와 완벽히 일치해야 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강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피곤한 구석이 여간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정직하다는 점에서는 올바르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토록 엄격한 '말할 수 있는 집'의 경계 바깥에는 정녕 아무것도 없는 것일까? 그곳은 어쩌면 전통 철학이 그토록 탐닉했던 모든 주제들— 윤리, 미학, 신, 삶의 의미, 그리고 '철학' 그 자체가 나뒹굴고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말할 수 없는 것'의 침묵하는 황무지로 추방된 셈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틀린' 것이 아니라 '무의미'하다.
"선(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사자는 파란색이다."
라는 말처럼, 논리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세계의 사실과 대응하지 못하는 공허에 불과하다. 여기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