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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_강용수 >-생각하는 어른

 <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_강용수 >-생각하는 어른

마흔의 시간전,마흔의 시간 중 , 그리고 마흔의 시간후에 읽는 쇼펜하우어 나의 이백마흔다섯 번째 독후감 왜 그 많은 시간 중에 마흔이란 시간이었을까?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문장 하나로 참 모질게도 질타를 받는 시기에 살았던 사람으로서 마흔 무엇인가를 완성 해놔야 할 시간일까?

마흔이란 나이까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젊은 나에게 질타하거나 질책 하지 말라고 아직 인생은 길다고 조금 더 힘내자고 하는 것에서 시작되었을까? 아니면 철없던 시절의 할 수 없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구별하지 못한 채로 욕망의 늪에 허우적대던 그 시절을 되짚어 나의 비뚤어진 욕망을 잠재 울 수 있는 시기가 바로 마흔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십대던 이십 대던 각각의 인생은, 모든 인생은 고통임이 분명한데 앞으로의 시기 인생의 어느 정도의 선에 올라선 이 나이에는 적어도 삐뚤게는 나가지 말자. 일 수도 있겠다.

세상사야 내가? 아니 나와 상관없이도 잘 돌아가는 거라 나의 부재에 그리 손해 날것들은 없기에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