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근대 동아시아의 소수민족들이 받는 오해: 적서차별이 없다 이런 오해는 적서차별이 유교의 전유물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일 겁니다. 실제로 적서차별은 소수민족 사회에서 더 심했습니다.
자원이 적은 상황이니 혼수가 적거나 없는 첩의 자식들에게 재산을 분배할 여유가 없으니까요. 소수민족 사회는 적서차별이 없다는 오해가 생긴 또 다른 이유는 우리나라와 중국에게 일부일처다첩제는 익숙해도 일부다처다첩제는 낯설기 때문이겠죠.
누르하치가 살아있을 때 팔기 분봉을 받은 아들들은 모두 적자고 측비의 아들인 아바타이를 제외하면 서자들은 분봉은커녕 공을 세울 기회조차 거의 얻지 못했지만 다처 개념을 모르면 분봉 기준이 혼란스러울 수밖에요. 맹고철철이 언제 적실이 됐는지 불확실해서 그런지 몰라도 측복진이라는 이야기가 퍼져있는데 제가 알기론 맹고철철이 측복진이라는 기록은 없습니다.
만문노당에선 누르하치가 맹고철철을 “나의 사랑하는 아내(mini haji sargan)”라고 부르며 만주 실록엔 맹고철철이 중궁대복...
원문 링크 : 후금 청초 만주족의 적서차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