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와 이름의 발음이 빚어낸 와전은 언어적 음운 변형에 의해 가장 강하게 드러난다. 장춘은 금과 원 교체기에 활약한 도교 전진교의 5대 조사인 구처기의 도호로서 장춘자 또는 장춘진인으로 불렸다. 발음의 변형은 구처기를 호와 결합해 부를 때 구장춘으로 들리게 만들고, 이를 중국어 원음으로 읽으면 치우창춘이 된다. 이 명칭이 조선으로 전해지며 입에서 입으로 전수되는 과정에서 한자로 다시 필사되는 동안 우리말 발음인 주장춘으로 오기되었다는 것이 핵심이다.
또한 전언과 학술적 연구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연대적 오류는 명나라 시대를 가정하는 풍토에서 비롯된다. 전진도통연계에서는 주장춘이 명나라 시대의 인물로 알려지는 편의가 생겼지만, 구처기 자체가 칭기즈칸과 교류하던 시기에 활동한 인물로 확인된다. 구처기가 13세기 말에서 12세기 말 사이의 시대에 활약한 사실은 문헌학적 분석에서도 확인된다. 명나라의 건국 시점보다 훨씬 앞선 시대의 인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교리적 정합성도 이 논쟁에서 핵심 축으로 남는다. 전진교의 삼교합일은 유교·불교·도교를 하나로 융합하려는 교단의 기치였고, 구처기가 이를 이념적으로 강하게 주장했다는 점에서 주장춘과 구처기의 사상은 내용 면에서 잘 맞아떨어진다. 구처기는 실제로 유·불·도 삼교의 교조는 근원이 같고 고금의 성인들이 온 유래는 동일하다고 설파해 삼교합일의 철학적 근거를 제시했다. 이처럼 발음의 와전, 시대적 혼선, 그리고 교리적 통일성의 조합이 이 논쟁의 중심 축을 구성한다.
원문 링크 : 구처기(장춘진인, 주장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