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씀은 영혼의 영속성이 밀도에 달려 있음을 시사합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육체를 가진다는 것은 천지 대자연의 기운을 흡수하여 내면의 정으로 저장하고 이를 불태워 영혼을 단단하게 구워내는 과정입니다. 도자기 장인이 흙을 빚어 불가마에서 구워내야 비로소 천 년을 가는 도자기가 되듯, 육체라는 가마 속에서 도의 불길로 정혼을 굳게 뭉쳐야만 사후에도 연기처럼 흩어지지 않는 온전한 신명으로 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현대 사회의 위기가 밑빠진 독처럼 새어나가는 정에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정은 단순히 육체적, 성적인 에너지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집중력과 생명력, 그리고 영적인 근원 에너지를 모두 포괄합니다. 자극의 홍수와 도파민 중독은 숏폼 콘텐츠와 자극적인 미디어의 끝없는 스크롤링으로 정신을 밖으로만 향하게 만듭니다. 눈과 귀를 통해 정혼의 에너지를 밖으로 흘려보내는 행위와 같아 여러 순간의 찰나적 쾌락과 생명력의 소모를 부릅니다. 말초적인 쾌락이나 스트레스성 과소비, 과도한 욕망의 분출은 육체 깊은 곳에 응축되어야 할 정을 가장 빠르게 고갈시킵니다. 이와 같은 삶의 방식은 내세의 영원한 삶을 유지할 배터리를 현재의 1초짜리 불꽃놀이에 태워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정이 고갈되면 기가 탁해지고 신이 흐려져 죽음 이후에는 스스로의 형태를 유지할 힘조차 없이 연기처럼 흩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유한한 삶을 무한으로 잇는 길은 수행에 있습니다. 이러한 논리적 개연성을 깨닫는다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으며, 지금의 이 육신이 얼마나 귀중한 기회인지 자연스레 알아차리게 됩니다. 밖으로 향하던 에너지를 안으로 거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겪는 공허함이나 불안은 밖에서 무언가를 채우지 못해서가 아니라 내면의 정이 빠져나가 속이 비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습관적으로 감각적인 자극을 찾거나 에너지를 낭비하려 할 때마다 이것이 나의 정혼을 흩어지게 하는가 아니면 단단하게 뭉치게 하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정을 갈무리하여 신을 밝히는 수행은 특별한 산속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가능합니다. 호흡과 명상은 들뜨고 흩어진 마음을 단전으로 끌어내려 고요하게 머물게 하는 것이며, 절제와 보정은 불필요한 감정 소모와 육체적 에너지 낭비를 줄이고 맑은 기운을 몸 안에 갈무리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일상에서 실천할 때, 육체는 소모품이 아니라 영원한 신명으로 거듭나기 위한 훌륭한 수련장이 됩니다. 인간의 삶이 유한한 이유는 그 짧고 치열한 시간 동안 얼마나 단단하게 스스로의 정혼을 뭉쳐냈는지 시험받는 무대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순간의 유혹에 정을 흘려보내기보다 내면을 고요히 바라보며 영원을 준비하는 수행자의 마음가짐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입니다.
원문 링크 : 사람이 윤회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