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부산 현장의 잔혹사로 지적된 지반 리스크가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전 국민적 이슈로 확산될 수 있음을 보았습니다. 연약지반과 해안매립지, 단층대 같은 특수 지반 조건은 언제든 재현될 수 있고, 이로 인한 공기 지연과 공사비 폭증, 분쟁은 계약 구조의 문제에서 비롯됩니다. 발표된 현황을 보면 만덕~센텀 도로, 부전~마산 복선전철, 충장대로 지하차도 등에서 공기가 크게 늘어나고 비용이 불어나며 소송까지 번지는 모습이 확인됩니다. 해외 사례는 계약에 지반 리스크를 미리 반영해 설계 변경과 비용 조정을 가능하게 하여 사후 분쟁을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국내에서도 설계변경 의무를 명확히 하고, 지반 리스크의 분담을 계약서에 구체적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커졌습니다.
핵심은 예측 가능한 위험과 예측 불가능한 위험의 경계를 계약서에서 명확히 나누는 것입니다. 현장설명서나 지반조사보고서에 이미 기재된 위험, 현지의 일반적 지반 조건, 도면상의 매설물은 시공사 책임으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도면에 없던 지하 구조물의 침범이나 보고서와 다른 실제 조건은 발주처와 시공사가 공동 부담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또한 불가항력 주장이나 지반 조건의 예측 불가능성은 단순한 주장으로 끝나지 않도록 객관적 입증이 필요합니다. 계약 조항도 설계변경만으로 끝나지 않게, 공기 연장에 따른 간접비의 별도 청구를 명시하고, 타절동의서에 청구권 유보 조항을 남겨 합의 해지 이후의 손해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합니다.
현장 초기 단계의 답사와 지반 위험의 정량화, 예측 불가능한 리스크에 대한 공동 부담 체계의 마련이 가장 시급합니다. 발주처는 지반 정보를 충분히 공개하고, 시공사는 이를 바탕으로 공사비와 공기를 합리적으로 산정해야 합니다. 불가항력의 인정 기준도 엄격히 적용되어야 하며, 계약서 한 줄이 수십억 원의 분쟁을 막는 만큼 사전 정합과 문서화가 중요합니다. 계약 전반에 걸친 체계적 반영이 없으면 분쟁은 피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는 지반 리스크를 사후 변수로 다루지 말고, 설계·발주·시공 전 단계에서 구체적으로 반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