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은 잠시 모든 것이 멈추는 짧은 공백이다. 그 고요함 속에서 아홉 명의 시인은 저마다 다른 세계의 문을 연다.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시집》은 그 문 너머의 풍경을 담은 책이다. 시인들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잊었던 기억의 온기를 마주하며 고독의 시간을 다르게 감각하게 된다.
강혜빈 시를 펼치면 익숙했던 현실의 감각이 아득해진다. 점심시간은 시간이 뒤틀리고 정체성이 모호해지는 기묘한 시공간으로 문득 뒤바뀐다.
시스템에서 이탈한 부품처럼 부유하는 감각은, 이내 모든 일상이 하나의 거대한 SF가 아닐까 하는 서늘한 질문 앞에 독자를 데려다 놓는다. 존재의 근원을 파고드는 철학적 사유가 낯설지만 매혹적이다.
발들이 문을 열 때마다 짤랑이는 종소리 여자는 언제나 나무젓가락을 반듯하게 쪼개는 일에 실패했다 다가오는 점심 김승일 무겁고 축축한 슬픔이 정제되지 않은 채 그대로 전해진다. 지키지 못한 약속과 그로 인한 죄책감은 「점심으로의 잠」이라는 공간 속에 스스로를 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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