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창식 목사 (달서교회, 대신대학교 특임교수) 한국 교회의 성장의 비밀은 무슨 ‘정책’이 아니라 복음을 수용하는 한국인들이 탁월한 ‘정신’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아니 그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총의 결과였다고 고백해야 할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1909년 경상감영 관풍루 모습 [사진 제공 = 대구시] 돌밭에서 옥토로 “경상도 지역 사람들이 진리를 수용할 준비가 되었다고 하지만 그곳은 돌밭에 떨어진 씨와 같이 곧 말라 버릴 것이다. 거기에는 듣는 자는 많으나 믿는 자는 적기 때문이다.”
벽안(碧眼)의 선교사들이 우리 지역을 찾았을 때 받은 느낌은 선교적 박토라는 것이었다. 서울과 북한 지방은 구도자(求道者)의 방문이 잦았고 큰 성과가 있었던 반면 남쪽에는 별로 성과가 없었다.
선교사들은 유교의 윤리에 젖어 새로운 종교와 관계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보았다. 그러나 경상도 지역의 토양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19세기 향촌사회(鄕村社會) 지배체제의 변화이다.
남인(南人) 중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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