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그리며/신사임당
내가 가장 좋아하고 읆조리는 시로 엄마를 생각하게한다 고향에 어머니 홀로 두고 온 마음이 저리게 전해저 오는 시다 산 첩첩 내고향 여기서 천 리 꿈 속에서도 오로지 고향 생각 뿐 한송정 언덕 위에 외로이 뜬..
키자드에 등록된 총 528개의 포스트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읆조리는 시로 엄마를 생각하게한다 고향에 어머니 홀로 두고 온 마음이 저리게 전해저 오는 시다 산 첩첩 내고향 여기서 천 리 꿈 속에서도 오로지 고향 생각 뿐 한송정 언덕 위에 외로이 뜬..
오늘도 이 땅에 전쟁이 계속된다는 소식은 가슴을 깊이 찌르며 들려온다 누군가의 아들이 어제도 죽었고 오늘도 또 죽어간단다. 그 속에서 함께 있어야만 하는 사람들 또한 우리들의 이웃이고 형제인데 매 순간..
내가 새라면 산 넘어 높이 높이 올라 그리운 엄마를 만나겠다 내가 새라면 바다 저 멀리 날아 보고픈 아버지를 만나겠다 날지 못한 새의 눈에 창공은 푸르고 넓기만 한데 물에 젖은 날개가 한 짐 삶이랴 날마다..
엄마 모시는 걸 거절하고 재혼의 길을 택한 여동생은 재혼한 지 4년이 채 되기도 전에 이혼을 했다. 잘 살길 바랬지만 주변의 바람과 달리 끝을 낸 것이다. 첫 단추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주변에 오빠들이 둘이나..
엄마는 아버지 옆으로 가셨다. 2주 전에 엄마와 합께 아버지 산소를 방문했을 때 "나 좀 데려가시오" 하시던 말을 듣고 아버지가 데려가셨나 보다. 하관이 끝나기도 전에 엄마가 살던 집으로 갔다. 지금은 오빠가..
어떤 공항을 가다 보면 종종 혼란을 느낀다 두 갈래로 갈리운 길에서 어디로 가야 하나 결정해야 할 때, 그 끝이 한정된 곳은 돌아 나오던지 한 바퀴 돌아서 다시 제자리로 올 수 있지만 끝을 모르는 상태에 놓인..
이모가 전화를 했다 바닷가 펜션을 예약해 두었으니 며칠 쉬고 오라고 하신다. 몸과 마음이 지쳐 있는 나를 배려해 주신 이모 마음이 고마웠다. 펜션에서 홀로 잠을 청하려는 데 전화가 울린다 동생이었다 막냇동..
아들과 함께 사는 것뿐만 아니라, 딸이라 할지라도 엄마에겐 편치가 않으셨나 보다 나를 떠나 한국 시설로 가신 후 엄마는 얼굴이 많이 편해지셨다. 식사도 천천히 하며, 예전의 모습을 되찾으신 듯했다. 무엇보..
남편과 마주 앉았다. 앞에 흔한 찻잔은 없지만 심도 있게 예기를 나누었다. 엄마가 사시는 동안 나는 한국에 가 있겠다고 말했다. 예상했지만 남편은 단호히 거절한다. 그러나 나는 포기할 수가 없어 나의 요구는..
엄마의 건강이 갑자기 나빠지고 있다는 말을 듣고 한국행을 결심했다 엄마가 아직 인지도 있고 기동도 할 수 있을 때 마지막 여행이라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겠노라 다짐하고 직장에 사표를 냈다 비행기 표..
내가 탄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랜딩을 했다. 평소 여행 시에는 짐을 많이 들고 다니지 않던 나는 엄마와 생활하려면 필요한, 때 이른 옷 가지를 넣었기에 케리어를 끌게 되었다. 트랙을 빠져나오는데 주위 사람들..
미국에 도착하신 엄마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영양식이었다 그동안 심각하게 부실했던 식사를 회복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출근해야 했던 나는 새벽이면 마실 것과 먹을 것을 준비 해 두고 갔다. 퇴..
출근하고 나면 혼자 남은 엄마는 준비해 두고 간 식사를 거르신다 퇴근 후 옷을 갈아입기도 전에 엄마 식사를 준비해 같이 먹는다 준비 해 두고 간 간단한 식사도 거르시는 엄마에게 화가 났다 영양식으로 건강..
엄마의 마음은 이미 한국에 가 있다. 날마다 한국으로 보내 달라 조르던 엄마는 드디어 옷들도 싸 두었다. 사워 후 몸을 감싸던 대형 타월이 좋으셨는지 당신이 쓰시던 타월을 함께 넣으셨다. "엄마, 쓰던 수건을..
엄마를 한국으로 보내드리기로 결정을 했다. 다시는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리라 하고 모시고 왔지만 6개월을 끝으로 엄마를 한국으로 보내 드리기로 결정을 했다. 엄마는 날마다 한국으로 가겠다고 조르시더니 이..
내 기억에 엄마는 살림을 잘하시는 편은 아니셨다 집을 깨끗이 치운다든지 반찬들을 만들어 가족을 챙긴다든지 하는 모습은 본적이 별로 없다. 청소는 주로 아버지가 하셨다. 부지런하신 아버지는 깨끗한 걸 좋아..
8년 전에 엄마를 미국으로 모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는 홀로 남은 엄마가 걱정이 되어 미국에서 나랑 함께 살자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단호히 거절하셨고 더 이상 설득을 못한 나는 엄마를 여동생에게 맡..
아버지가 돌아가신 2년 후 나는 엄마를 방문했다. 엄마 모시고 있는 올케가 감사해 주려고 산 명품 가방을 들고. 엄마를 보는 순간 기가 막혔다. 2년 만에 본 엄마는 살아 계신 분이라고 상상이 안될 정도의 몰..
엄마가 어느 정도 회복하고 계실 때 오빠를 찾아갔다. 함께 의논을 해야 했기에 큰 동생을 불렀다. 큰 올케는 일부러 아주 늦게 집에 들어왔다. 조카아이는 건넌방에 있으면서 나와 보지도 않는다. 늦은 시간 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내가 느꼈던 느낌은 내 발이 걸을 때 땅을 닿지 않은 듯했다. 발이 디딜 곳이 없어 허공에서 헛 발질로 걷는 것 같은 느낌, 누구도 상상 못 할 것이다 앞으로 가려해도 제자리에서 발이 시늉..
여동생 집에 머물고 계시는 엄마를 방문했다. 많이 좋아 보였다. 움추러져서 작아졌던 키도 많이 펴진 듯했고 얼굴의 병색도 사라졌다 무엇보다 가슴을 들썩이며 쉬셨던 호흡이 많이 편해지셨다 집중치료를 받은..
밤늦은 시간에 서울에 도착했다 바쁘게 서둘러서 왔지만 늦은 퇴근시간과 맞물리는 서울 진입은 많이 복잡했다 화장실을 찾으시는 엄마를 달래서 참으시라고 하고 왔건만 복잡한 차 군중 속에 끼어 버린 것이다...
환자와 노인들이 머무는 양로시설은 정해진 일수 이상 안에 머물러야 한단다 일수가 모자라면 국가 보조금 받는데 문제가 있다고 한다 장시일 외출을 하려면 퇴소를 했다가 다시 입소하기를 권한다 그러나 다시..
이번 방문에 남편이 동행을 한 건 목적이 있어서이다 중국 여행이었다. 이 나이가 되어도 철없는 남편은 자기 중심적이다 혼자 움직이는 걸 싫어하는 남편은 엄마 때문에 방문하는 나를 졸랐다. 늦기 전에 중국을..
10월이 시작되는 날씨는 눈이 부시다. 아직 따가운 햇살에 의해 그늘이 그립지만 맑은 날씨는 기분을 좋게 한다. 서울을 향해 올라오는 길엔 차들이 참 많았다 예전엔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다녔는데 , 해안 쪽으..
잠시 쉬었던 엄마를 모시고 식당으로 갔다. 호텔 주변에 여러 음식점들이 있었지만 나는 아는 데가 없었다 가까운 곳 눈에 띄는 음식점을 들어서는데 입구가 어두웠다. 터덕거리는 엄마를 부축해 직원이 안내해..
2년 만에 엄마를 보러 한국에 갔었다. 엄마의 몸이 많이 쇠약해지셨다는 말을 듣고 더 늦어지기 전에 엄마와 함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추억을 만들고 싶어 시간을 만든 것이었다. 엄마는 여전히 시설에 머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