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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냐민의 자루에 은잔을 (창 44:1-13)

9 당신의 종들 중 누구에게서 발견되든지 그는 죽을 것이요 우리는 내 주의 종들이 되리이다 10 그가 이르되 그러면 너희의 말과 같이 하리라 그것이 누구에게서든지 발견되면 그는 내게 종이 될 것이요 너희는 죄가 없으리라 11 그들이 각각 급히 자루를 땅에 내려놓고 자루를 각기 푸니 12 그가 나이 많은 자에게서부터 시작하여 나이 적은 자에게까지 조사하매 그 잔이 베냐민의 자루에서 발견된지라 13 그들이 옷을 찢고 각기 짐을 나귀에 싣고 성으로 돌아 가니라 (창 44:9-13)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는 줄 알았다. 청지기가 따라와서 은잔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떤 형제도 그런일을 할 마음을 먹을수도 없고 더욱이 그런일을 할 사람은 없었기에 자신있게 ‘누구에게서 발견되든지 그는 죽을 것이요 우리는 종이 되겠다’고 했다. 요셉의 청지기는 관대하게도 ‘은잔이 발견되는 사람만 종이 될 것이다’ 라고 하고 나머지는 죄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모든 형제들이 급히 자루를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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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tiny has been fulfilled! (창 43:16-34)

26 요셉이 집으로 오매 그들이 집으로 들어가서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땅에 엎드려 절하니 (창 43:26) 이 장면은 정확하게 요셉이 꾼 꿈이 실현되는 장면이다. 6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7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창 37:6-7) 요셉이 준비되지도 않은 철없는 때, 17세 소년의 때에라도 요셉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다. 그 계획은 요셉이 계획하고 생각했던 것도 아니고 전혀 상상치도 못했던 계획이지만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향한 당신이 이루고자 하시는 계획이 있으셨다. 우리는 하나님을 오해한다. 하나님은 나의 길을 돕는 자 정도로만 생각한다. 내 인생은 내 스스로 주체적인 존재가 되어 결정해 나가는 것으로 인식하며 하나님은 그저 내가 결정하고 나아갈 때 돕는 자 정도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의 나를 향한 청사진 (Blue Print)이 있음을 말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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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베냐민을 놔!! (창 43:1-15)

1 그 땅에 기근이 심하고 2 그들이 애굽에서 가져온 곡식을 다 먹으매 그 아버지가 그들에게 이르되 다시 가서 우리를 위하여 양식을 조금 사오라 (창 43:1-2) 야곱은 시므온이 잡혀 있는 것을 알고 있다. 베냐민을 보내기 전에는 시므온과 양식 둘다 얻을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르우벤이 자기 자식을 담보로 잡히고 ‘반드시 베냐민을 무사히 돌아오도록 하겠다’고 했으나 야곱이 단칼에 거절한 이후로 곡식을 다 먹을때까지 모두가 시므온에 대해서 걱정했고 또 양식이 떨어져가고 있었지만 야곱과 아들들 사이에 이 대화는 없었다. 야곱이 절대 베냐민을 놓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계획은 내가 붙들고 놓지 않는 것이 있을때 정지된다. 야곱은 하루하루 현실을 도피했지만 궁지에 몰리고 몰려 결국 양식이 떨어져 먹을 것이 없을 때에서야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12 너희 손에 갑절의 돈을 가지고 너희 자루 아귀에 도로 넣어져 있던 그 돈을 다시 가지고 가라 혹 잘못이 있었을까 두렵도다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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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요셉은 굳이 베냐민을 애굽으로 데려오게 했을까? (창 42:1-17)

15 너희는 이같이 하여 너희 진실함을 증명할 것이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너희 막내 아우가 여기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여기서 나가지 못하리라 16 너희 중 하나를 보내어 너희 아우를 데려오게 하고 너희는 갇히어 있으라 내가 너희의 말을 시험하여 너희 중에 진실이 있는지 보리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는 과연 정탐꾼이니라 하고 17 그들을 다 함께 삼 일을 가두었더라 (창 42:15-17) 왜 요셉은 바로 자신이 요셉임을 밝히지 않고 자신을 숨긴채 막내 베냐민을 데려오도록 했을까? 요셉은 분노 때문에 그랬거나 충동적으로 그랬던 것은 아니다. 어쨌든 그는 직접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 형제들이 자기를 찾아오는 이 상황이 되기 전에 이미 가나안에 가서 아버지와 형제들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만약 요셉이 총리가 되고 바로 가나안으로 가서 아버지와 형제들을 보았다면 지금과 무슨 차이가 있었을까? 일단 요셉은 애굽을 떠나는 것이 그렇게 만만한 문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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