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거를 앞두고 나는 불편함을 견디기보다 공간을 다시 생각했다. 양진재 9층에서의 두 달은 과연 어떤 균형을 보여줄지 기대했지만, 실제로는 그 균형이 무너지기 일쑤였다. 룸메이트는 착한 친구였지만 나와 리듬이 달랐고, 아침형인 나는 새벽에 그가 노래를 흥얼거리는 소리와 이어폰으로 채워진 공간을 바라보며 잠이 들었다가도 다시 깨곤 했다. 작은 싸움들이 쌓이고 마음은 점차 무거워졌다. 어느 날 밤 11시 화장실 앞에서 울고 있는 후배를 보며 이 공간이 더 이상 나를 편안하게 해주지 않는다고 느꼈다. 이때부터 퇴거는 단순한 절차가 아니라 마음의 결정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절차적으로 보면 퇴거는 의외로 간단했다. 온라인으로 신청서를 내고 카드키를 반납한 뒤 방 청소까지 마치면 된다. 그러나 진짜 어렵고 중요한 건 내가 내린 결정이다. 누군가는 “조금만 더 참자”고 말하지만, 그 ‘조금’이 너무 오래 버티게 한다는 걸 알게 된다. 환불 규정은 명확했고,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움직여야 했다. 이 모든 행정적 정보보다 더 중요한 건 내 마음의 준비였다.
기숙사를 벗어나 원룸으로 나아가자 삶의 질은 확 분명히 달라졌다. 가까운 학교의 이점은 여전했지만, 내가 주도하는 리듬과 공간의 조용함이 주는 집중력은 또 다른 세계를 열었다. 복대동과 사창동의 골목들을 지나, 몇 군데 방을 둘러본 끝에 지금의 공간 중 하나에 정착했다. 그 공간을 소개해준 자취 선배의 중개사무소는 이름마저 친근했고, 지금은 자주 들여다보게 된다. 이곳에서 나는 편안한 혼자의 시간과 자율적인 생활 리듬, 새벽의 조용한 집중을 만난다. 모든 것은 ‘내 공간’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기숙사를 떠나야만 보이는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배웠다. 처음은 두려웠지만, 이 공간에서의 선택은 내 삶의 주도권을 되찾게 했다. 누구에게나 기숙사는 처음이고 떠남은 어렵다. 하지만 한 번쯤은 스스로에게 물자. 이 공간이 지금의 나에게 잘 맞는가? 그 질문 앞에서 용기를 내는 사람의 다음 공간은 늘 더 따뜻해진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