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이의 “싫어”가 발현되는 과정을 자율성 발달의 중요한 신호로 해석합니다. 만 18개월에서 3세 사이에 자율성 대 수치심의 과업이 형성되며, 이 시기의 아이들은 스스로가 부모와 분리된 독립적 존재임을 확인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싫어”는 단순한 반항이 아니라 자아가 생겨나고 있다는 표현의 첫걸음입니다. 연령에 따라 같은 말이라도 담긴 의미가 달라지는데, 만 1~2세에는 주로 몸짓이나 거부로 표현하다가 언어가 발달하면 “싫어”, “안 해”, “내 거야” 등의 말로 경계가 선명해집니다. 만 3~5세에는 주도성을 강조하는 시기로 접어들며, 이때의 “싫어”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내가 결정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표현으로 확장됩니다. 만 6세 이상이 되면 취향과 가치관이 점차 구체화되며, “왜 싫은지”를 설명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능력이 생깁니다. 이는 자기 정체성의 형성과 연결됩니다.
에릭슨은 이 시기에 아이의 자율성이 충분히 지지되면 의지력(will)이 형성되지만, 계속해서 억압되면 수치심과 자기 의심이 내면화될 수 있다고 봅니다. 모든 “싫어”를 다 허용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감정과 표현 자체를 인정하고 모든 요구를 다 들어주려 하지 않는 구분이 필요합니다. 이 시기를 “me do it” 단계로 보며, 옷 선택이나 식단 같은 일상의 작은 결정에서 선택권을 주는 실천이 자율성 발달을 지지합니다.
부모의 바람직한 반응은 “싫구나”를 인정하되 범위 안에서 선택지를 제공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그렇구나 그럼 이것과 저것 중에 무엇이 좋겠니?”처럼 결정의 일부를 아이에게 돌려주면 자율성 욕구가 충족되고 불필요한 충돌은 줄어듭니다. 반면 “넌 맨날 싫대” 같은 낙인이나 강압적 반응은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부끄럽게 여기게 만들 수 있습니다. 안전에 직결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균형 있게 자율성을 지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필요하다면 감각 처리나 기질적 요인까지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되며, 이 시기의 아이는 자기 자신을 뚜렷하게 인식하는 존재임을 존중하며 함께 표현 방식의 다양성을 배워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