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장수로 살던 "을불"을 찾아내, 봉상왕을 몰아내고, 을불을 왕으로 즉위시킨, 당시 국상(國相)인 "창조리"라는 인물이 있는데,그는 정변이 성공한 이후,기록에서 영원히 사라진다. 반면에, 이전에도 비슷하게 폭군을 몰아내고, 새로운 임금을 옹립한 "명림답부"는 "창조리"와 달리 업적과 죽음까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는 것과 비교하면, 뭔가 이유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로, 명림답부는 왕을 몰아내고, 새로운 왕(신대왕)을 옹립하고, 한나라의 공격을 막아내고, 179년 9월에 죽었는데, 신대왕은 크게 슬퍼하며 스스로 영구에 이르어서 통곡하였고 7일 동안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 또한 명림답부를 질산에 장사지내고 수묘(守墓)20가호를 두어 무덤을 지키게 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런데, "창조리" 는 왜 "명림답부"와 다르게 기록에서 사라졌을까? 만약, 바로 자연 병사했다면, 애도하는 왕의 기록과 묻힌 묘에 대한 기록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당시, 을불(미천왕)을 옹립한 핵심 인물...
원문 링크 : 미천왕(을불)이 숨긴 '창조리'에 대한 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