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습관처럼 이어오던 블로그 글쓰기에 쉼표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일정과 상황이 이어진 탓도 있지만, 사실 게으름을 피우며 지내는 중입니다. 10~20분 만에 글을 올리는 능력자들도 주변에 계시지만, 저는 긴 시간을 들여 글을 쓰는 경우가 많아 시간에 대한 압박감이 많은 편입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잠시 글쓰기를 멈추고 의도된 게으름의 시간을 보내려 합니다. 2년 정도 시청하지 않았던 프로야구도 라이브로 보는 시간도 가졌고, 최근 하위권 팀을 응원하다가 상위권 팀을 이기는 저력을 보기도 했습니다. 꽃가루 알레르기때문에 창밖의 멋진 풍경을 피하려 했지만, 오늘은 그 풍경을 감상하는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아침이면 마주하는 앞산 능선은 이제 꽃가루에 조금은 적응한 덕에 약을 먹지 않아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더군요. 덕분에 어둠이 찾아들 때면 창문을 열고, 나뭇가지에 숨어든 새들의 지저귐을 들을 수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봄빛 가득한 나무에 둥지를 틀었을 텐데, 유리창에 막혀 소리를 듣지 못했을 테지요. 저녁 무렵 수리산의 풍경은 어둠이 깊어지며 함께 짙은 아카시아 향기를 실어 오고, 애달픈 새소리에 실려오는 향기가 제 감각을 흔듭니다. 짙푸른 정막을 헤치고 다가오는 봄의 향기는 제게 일상의 활력을 일으키고, 게으름을 허락한 시간 덕분에 눈앞에 숨겨진 소중한 것들을 하나씩 발견하게 돕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잊지 못하던 낡은 책들을 다시 펼쳤고, 한때 진보 진영의 뛰어난 논객으로 여겨지던 작가의 책과 미학의 길을 따라 가보았습니다. 대학시절 미학에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책들인 미학 오디세이의 1, 2권과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함께 읽으며 서양 미술을 바라보는 시각을 다듬었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는 공중파 정치토론에서 가짜 보수를 향해 날카로운 직격을 날리던 모습이 남아 있지만, 현재는 보수 성향의 종편에서 진보 정당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근주자적 근묵자흑이라며 변절을 비난하는 목소리들 속에서도, 저는 그의 책을 통해 진보 진영의 모순을 어느 정도 직시하게 되었고, 보수 측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을 이해하려 애썼습니다. 막연한 거부감을 내려놓고 읽다 보니, 왜 지금은 다른 톤으로 외치는지 그 의도를 조금은 이해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달리던 고속열차에서 내려 먼지가 날리는 비포장도로를 천천히 걷는 여유를 즐기며, 길가의 풍경 속에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웃음 소리, 작은 꽃들의 손짓을 바라보는 행복감에 잠깁니다. 지친 몸과 마음에 활력을 되살리려 허락한 소중한 게으름의 시간을 만끽하는 오늘의 나를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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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링크 : 게으름 - 호기심건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