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창 부인에 대한 기사 반복창 이사람은 집안이 잘 살았는데 한일합병조합으로 가세가 기울어 가족들이 장사를 시작 하지만그거 마저 망해 집안이 ㅈ되버리고 12살의 나이에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게되었고 반복창은 아버지가 남겨준 “유산” 빚을 물려받게됨 선물거래 신화를 쓴 반복창 돈이 없으니 어쩔수없지 하면서 일본인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하인으로 취직하게됨 근데 그 당시에 저 일본인이 무슨 일을 했냐면 한양 - 인천에 쌀 운송하고 이것저것해서 돈을 긁어모으던 일본인이였음 그 일본인은 미두시장(거래소)가 생기자 중매점(매매중개인)을 만들어서 또 돈을 ㅈㄴ 모음 Previous image Next image 일제대 당시 최저임금으로 거부가 됨 일본인이 운영하던 중매점에서 반복창은 그당시 “인간 트레이딩뷰”가 됨 일본 쌀 시세가 얼마고 한국 쌀 시세가 얼마다 이런거 외치던 역할임 급여는 월 6원(박봉) 근데 이걸 ㅈㄴ 모으고 모아서 400원을 만듬 열심히 일하고 모은돈으로 반복창은 선물시장에 뛰...
원문 링크 : 일제시대 선물거래하며 영화같이 살다 몰락한 한국인, 반복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