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여행의 핵심은 단연 무왕이다. 백제 제30대 왕으로 재위 기간은 600년에서 641년까지이며, 역사 속 강력한 군주로 기록되지만 기억 속 서동 요정의 서사가 먼저 떠오른다. 마를 캐며 살던 총각 서동이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를 사모해 꾀를 냈다는 서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향가 중 하나로 남아 1,400년이 넘는 세월 속에서도 전해지는 K- 로맨스다. 서동은 신라 수도에 들어가 아이들에게 노래를 퍼뜨렸고,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서동 도련님과 밤에 만나러 간다”는 가짜 뉴스 같은 노래가 궁중까지 번지자 진평왕은 딸을 귀양 보낼 수밖에 없었다. 서동은 그 길목에서 기다려 선화공주를 데리고 백제로 돌아와 왕위에 올라 무왕이 되었다.
서동요의 배경이 된 궁남지와 서동공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왕실 정원으로 손꼽힌다. 익산 금마면에 자리한 서동공원 안의 궁남지는 삼국사기에 634년 남쪽에 못을 파고 물을 끌어다 채운 기록이 남아 있으며, 버드나무와 섬, 정자를 통해 신선이 사는 이상향을 꿈꾼 정원으로 평가된다. 6월 초여름 연꽃이 피어오르는 시기와 맞물려 못 가운데 조성된 섬과 반사된 하늘, 살랑이는 바람이 과거 무왕과 선화공주가 걷던 길을 현재의 방문객이 함께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왕궁리 유적은 백제 무왕 시대의 왕궁터로 여겨지는 곳으로 사적 제408호다. 무왕이 부여에서 익산으로 도읍을 옮기려 했다는 학설이 신빙성을 얻고 있으며, 유적지 중앙의 왕궁리 5층 석탑은 국보 제289호로 남아 있다. 고려 시대에 탑으로 바뀐 탑의 해체 조사에서 백제 시대의 사리장엄구와 금강경판이 발견되며 이 땅이 백제의 숨결을 품고 있음을 확인시킨다. 동서 약 245m, 남북 약 490m의 직사각형 형태로 드러난 궁성 구조와 후원의 정원·공방 시설 흔적은 왕의 삶과 문화가 총망라된 공간임을 보여 준다.
서동 요 로맨스의 역사성은 끊임없이 논쟁의 대상이다. 2009년 미륵사지 서탑 해체 과정에서 1층 심주석 내부의 금제 사리봉안기가 발견되었고, 기록에는 미륵사를 창건한 왕후가 선화공주가 아니라 백제 귀족 사택적덕의 딸이라고 명확히 적혀 있다. 삼국유사 속 선화공주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 무왕의 왕위 등극 과정에서 민심을 얻기 위한 정치적 서사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1,400년 전 여론 기획과 대중의 마음 움직임이 이미 존재했다는 점을 시사하며 낭만의 일부를 깨뜨리기도 한다. 익산의 땅 위에 서면 그 결이 한 겹씩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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