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야의 공적 사역이 시작되기 전, 하나님은 그를 먼저 숨기셨다. 그곳이 그릿 시냇가였고, 이름이 낯설 수 있지만 엘리야라는 이름은 이미 알려진 바였다. 오늘부터 엘리야와 엘리사의 13가지 기적 이야기가 함께 풀려 나가고, 이 여정의 시작점 역시 바로 이 그릿 시냇가다.
지도를 보면 북쪽은 단, 남쪽은 브엘세바가 있다. 성경은 이스라엘 땅을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로 표현하는데, 엘리야의 이야기는 단에서 시작해 엘리사의 이야기는 브엘세바까지 이어진다. 두 선지자의 사역은 이스라엘 전역을 포괄하는 큰 맥락 속에 자리한다. 그릿 시냇가는 요단강 동편, 디셉 근처에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요단강을 건너 서쪽으로 들어왔으나, 엘리야의 부르심은 반대편 동편에서 시작되었다.
열왕기상 하를 흔히 “왕들의 이야기”로 부르는 이유는 여러 왕들의 통치와 행적 속에 엘리야와 엘리사의 이야기가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북이스라엘의 수도는 사마리아, 남유다의 수도는 예루살렘이다. 사마리아는 아합의 시대에 가장 번성했지만 영적으로는 가장 타락했다. 그런 어둠의 시기에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가 등장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왕의 힘과 반대로, 이름 없는 자로 불리는 엘리야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간다.
열왕기상 17장은 엘리야가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말하며 예언을 선포하는 장면을 기록한다. 그는 단지 디셉 사람으로 소개될 뿐 가문이나 지파 같은 배경은 명시되지 않는다. 우거하는 자라는 표현은 잠시 머물다 가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엘리야는 세상적 배경이 없음에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로 선택되었다. 이로써 하나님의 뜻은 세상의 권세와 무관하게 작동한다는 메시지가 강하게 드러난다.
아합의 길로 갔다, 여로보암의 길로 갔다 하는 성경의 표현은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의 심각성을 보여 준다. 아합 왕의 통치 아래 이스라엘은 정치적 번영을 이뤘으나 영적으로는 타락했다. 이때 엘리야는 “내 말이 임하지 않으면 이슬도 비도 내리지 않으리라”라고 담대하게 선포한다. 그 담대함은 세상의 힘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확신에서 나온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이 원리를 가르쳤다.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은 하나님의 쓰임이 힘이 아니라 섬김에서 비롯됨을 보여 준다. 엘리야가 위대한 선지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하나님을 섬겼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 자체가 “나의 하나님은 여호와시다”를 말해 주며, “내 말이 없으면 이슬도 비도 내리지 않으리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드러낸다.
가뭄은 단순한 기상 현상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을 깨우려는 영적 경고였다. 나라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 국민 전체에 그 영향이 미친다는 사실은 오늘날의 현실과도 닿아 있다. 그릿 시냇가는 엘리야에게 도피처가 아니라 훈련의 자리였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역사를 이루는 준비의 시간이었다. 숨겨진 시간은 은혜를 배움으로 다가오며, 그 은혜는 버팀의 힘으로 작용한다.
왕상 17장 6–7절이 보여 주듯 까마귀가 아침저녁으로 빵과 고기를 가져다 주고 시냇물을 마르게 하는 은혜는 풍족이 아니라 충분을 주는 은혜다. 은혜를 은혜로 보지 못하는 마음이 문제였고, 숨겨진 시간에 주어지는 은혜는 체험의 확신을 주지만 그리스도 자체의 위대함은 여전하다. 삶의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이 내 인생을 주관하셨다는 증거를 고백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엘리야는 가뭄의 현실을 몸으로 체감하고, 공급하시는 은혜를 실제로 경험한다. 그리하여 숨김의 때와 파송의 때를 차례로 거치며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된다. 그 후 엘리야는 순종으로 걸으며 하나님의 일을 계속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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