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에서 뮤지컬 〈앤 ANNE〉를 보고 돌아오는 길, 오랜만에 마음 한쪽이 오래도록 따뜻했다. 공연을 보기 전에는 ‘빨간 머리 앤’이라는 익숙한 이야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이 내린 뒤 남은 감정은, 예상보다 훨씬 깊었다. 이 작품의 진짜 힘은 후반부에 있다.
처음 무대에 등장하는 앤은 말 그대로 말랑한 소녀다. 상상력이 넘치고, 감정에 솔직하며,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아이.
공연 초반의 앤은 밝고 사랑스럽지만, 어쩌면 우리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 그 자체다. 시간이 흐르면서 앤은 자라난다.
그리고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오는 현실은 결코 가볍지 않다. 관계의 변화, 이별, 선택의 무게, 그리고 어른이 된다는 것의 의미.
이 뮤지컬은 그 과정을 과장하지도, 미화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더 아프고, 그래서 더 진심으로 다가온다.
후반부에서 어엿한 성인이 된 앤의 모습은,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의 나, 우리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시간이라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