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도감(訓鍊都監)은 조선 후기 수도 한성부의 방어를 위해 설립된 중앙군이다. 훈국(訓局)이라고도 하였다.
임진왜란이 소강기로 접어든 1583년(선조 26) 명의 척계광의 <기효신서>에서 삼수병 체계를 모델로 훈련도감을 신설하고 유성룡을 도제조로 삼아 임시기구로 설치된다. 1746년(영조 22) 상설기구로 규정된다. 오군영의 중심 군영역할을 하다가 1881년(고종 18) 별기군이 설치되고, 이듬해 폐지된다.
삼수병은 조총이나 총통을 사용하는 포수(砲手), 활을 쏘는 사수(射手), 적 기마 돌격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칼, 창을 사용하는 살수(殺手)가 연계되는 편제였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급료를 지급받고 계속하여 근무하는 장번군(長番軍) 형태의 장기근속 직업군인으로 평민은 물론 유생과 같은 양반, 노비와 승려 등 천민까지 다양한 신분으로 구성되었다, 특히 공을 세운자에게는 면천의 특혜를 주었기에 신분 상승을 노리고 입대한 자도 많았다.
처음 200여 명의 포수로 시작하여 전쟁중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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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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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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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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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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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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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수사수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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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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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