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전쟁의 아픔이 채 아물지 않았지만, 제3대 국회는 국회의사당 건립추진위원회가 구성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회의사당이자 1948년 5월 31일 제헌 국회의 개헌식이 열린 곳은 구 조선총독부 건물인 당시 중앙청이었다. 이후 국회의사당은 한국전쟁으로 대전, 대구, 부산 등으로 이전하며 임시 사용하였고, 휴전협정 조인으로 다시 중앙청으로 복귀 하였다가, 1954년부터 현재 서울시의회가 사용하고 있는 옛 부민관을 사용하고 있었다.
국회의사당 건립추진위원회는 광화문에서 가깝고 교통이 편리한 곳, 주위 환경이 아름다운 곳 등 부지 선정 조건을 정하고 최적지로 종묘 일대를 정한다. 마침 종묘 앞에 대규모 광장 개설 예정이었다.
그러나 문화재관리국(현 국가유산청)이 반대한다. 또한 전주 이씨 양녕대군 후손이었던 이승만 대통령도 반대하였고, 경무대(현 대통령실)에서는 남산의 조선신궁터를 제안하여 확정된다. 1959년 5월 15일.
육군 공병단이 투입된 국회의사당 기공식이 남산에서 성대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