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관은 조선시대부터 근대기까지 부산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었으며, 조선실·근대실·현대실·미술실 등 4개의 전시실로 나뉘어 있었다. ‘부산’이라는 지명은 『조선왕조실록』에 처음 등장한다.
동평현(東平縣)의 부산포(富山浦)에 왜구가 들어와 천호(千戶) 김남보(金南寶)와 사졸(士卒) 10여명을 죽이었다. 태종실록 2년 1월 28일 (1402) 이때의 표기는 오늘날의 부산(釜山)이 아니라 부산(富山)이다.
왜구의 침입과 함께 등장하는 만큼, 부산은 처음부터 일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속에서 기록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오늘날의 부산(釜山)은 1469년(성종 즉위년)에 처음 등장하는데, 이때도 ‘산(山)’이 아니라 ‘부산포(釜山浦)’의 형태로 나타난다.
부산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정작 ‘부산’이라는 이름의 산은 없다. 일반적으로는 좌천동 뒤편의 증산(甑山)의 모양이 가마솥(釜)처럼 생겼다고 하여 ‘부산’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현재의 부산시 동래구를 중심으로 금정구·연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