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는 인간의 본성이 선한가 악한가라는 오래된 물음에 실명이라는 극단적 장치를 통해 꾸준히 다가선다. 문학적 특유의 밀고 나가는 문장과 건조한 시선을 따라가면, 인간 존재의 본질과 살아가는 방식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이 독자 앞에 놓이게 된다.
작품은 한 남자가 백색 실명으로 시력을 잃으면서 시작된다. 아내의 도움으로 안과를 찾지만 치료법은 부재하고 진단조차 어렵다. 실명은 전염성이 있어 주위 사람들까지 차례로 시력을 잃게 되고, 결국 병원은 격리 생활의 공간으로 전환된다. 더럽고 불편한 환경 속에서 규칙을 지키려 하지만 인원이 늘어나면서 질서가 무너지고 욕망과 폭력이 표면으로 드러난다. 문명이라는 껍데기가 벗겨진 자리에서 인간의 민낯이 어떻게 드러나는지가 집중적으로 탐구된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실명 확산 속에서 각 인물의 본성이 더 선명해진다는 것이다. 타인을 희생 없이 이용하는 이도 있고, 끝까지 타인을 돌보려는 이도 있다. 실명은 사람의 내면을 드러내는 작용으로 작동하며, 무엇을 보든 외면해온 현상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유일하게 눈을 보이는 의사 아내는 이들 사이에서 살아남아 이들을 돕겠지만, 볼 수 있음이 오히려 가장 앞서 추악한 현실을 마주하게 하는 부담이 된다.
본다는 책임으로 작동하는 순간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하는지, 본성만 남은 세상에서 무엇이 삶을 지탱하는지 묻는다. 이타심과 연대가 궁극적으로 인간을 버티게 하는 힘으로 제시되며, 이들이 서로를 지키려는 노력이 절망 속에서도 살아남기를 가능하게 한다. 원작의 강렬한 작품성은 2008년 동명의 영화로도 확장되었고, 영화는 다른 매체를 통해 불편하고도 묵직한 질문을 전달한다. 서평 시점의 정보에 따르면 시청 가능 매체가 변동될 수 있어 최신 정보를 확인하는 편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