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에 만났다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이제는 쓸모없는 책 1. 이 책은 쓸 데가 없다. 서울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한 지 10년쯤 된다. 무심히 지나치던 도시의 곳곳이 문득 각자의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한 게 그때라서이다. 스무 살에 상경해 군복무 기간을 제외하곤 20년 가까이 살아온 도시가 서울이었지만, ‘내가 살고 있는 도시’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고 살았던 탓이 크다. 불혹을 지나면서 되돌아보니 강원도에서 살았던 세월보다 서울에서 살았던 시절이 더 길더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스스로를 ‘서울 사람’이라고 여기는 계기가 되었으며, ‘신림동 안씨’를 자칭하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다. 블로그에 포스트를 정리하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로 보인다. 처음에는 기행문 같은 것으로 시작했으나, 어느 순간 아카이빙으로 바뀌고 다시 기행문으로 돌아갔다. 이런 변화의 와중에 글의 성격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고, 역사와 철학에 관한 사유가 늘어나면서 인문학적 글쓰기가 시작되었다. 발걸음을 했던 곳들의 물적 토대인 건축물들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려다 보니 건축사적 탐색도 점차 늘었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이런 사변적 글이 어디에 쓰일지 의아했지만, 최근에 쓴 포스트들을 다시 읽어보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하게 된다. 읽는 이가 많지 않아도 무방하다는 자세로, 글 자체가 충실한 아카이빙이 되었다는 느낌이 강하다. 다만 다른 누군가에게 읽히려고 쓴 글이 아니니 상관없다라는 태도도 있다. 인문학적 글쓰기의 전환 이후 가장 절실했던 것은 제대로 된 참고문헌이었다. 특히 건축학 지식은 바닥이었던 만큼 글로 풀어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도판으로 이해하는 세계건축사 같은 책들부터 시작해 주거사에 기반한 한국건축사에 관한 책들을 읽어가며, 임석재와 민현석의 저서를 큰 도움으로 삼았다. 이 책이 5년 전쯤에만 출간되었다면, 그때 펼쳐볼 수 있었을 시행착오가 상당히 줄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쉬움이 크다. 지금은 문화유산청의 각종 보고서나 한국학술지인용색인 사이트가 제공하는 논문들로 더 풍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정보 획득 경로가 마련되어 있어, 이 책은 이제 빈약하게 보일 뿐이다. 그런 맥락에서 至今의 정보 체계 속에서는 이 책이 제공하는 정보의 양과 질이 다소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그러나 이 책 자체의 가치는 여전히 남아 있다. 다만 5년 전쯤이었다면 더 자주 펼쳐보았을 책으로 남아 있을 법하다. 박이부정의 성격으로 100여 곳이 넘는 건축물을 다루는 부분은 초심자에게도 흥미를 주고, 너무 전문적으로 쏟아지지 않아 고개를 끄덕이며 읽어볼 수 있다. 임석재나 민현석의 책과 비교해도 더 깔끔하게 읽히는 편이라는 점도 있다. 20세기 초반 ‘게이조 京城’의 풍경을 찾아다니는 데 도움을 얻고자 한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추천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