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제주 4.3 사건 당일 새벽 오름마다 봉화가 오르면서 무장봉기가 시작됐다. <대정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 중에서..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경 오름 정상에 붉게 타오르는 봉화를 신호로 남로당 제주도당의 주도로 350명의 부장대가 도내 24개 경찰지거 중 12개 지서와 경찰 , 서북청년단원의 숙소를 공격하는 무장봉기가 벌어졌다고 해요. 봉기의 명분으로 내 세운 것은 두가지 라고 무장봉기가 내세운 두가지 명분 1.경찰과 서북청년회 등 우칙 청년단의 탄압에 저항 2.
통일 독립을 이룩하겠다는 뜻 무장대는 초기 일본군이 남기고간 총 100여개와 수류탄이 전부였고 대나무로 만든 죽창이 주 무기로 사용할 만큼 빈약한 무기를 가지고 있었고 인원도 초기 350명 정도이고 후에 4.3 전 기간을 통틀어 500명을 넘지 못했다고 알려졌어요. 이는 미국군의 신식 무기로 무장한 정부군의 비하면 미약한 수준이었죠.
그럼에도 그들이 봉기하고 일어나싸울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윤희춘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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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링크 : 아이와 제주역사 이야기 4.3 무장봉기는 왜 일어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