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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조선 후기의 문화8(금석문,서학,동학)

 84.조선 후기의 문화8(금석문,서학,동학)

이번엔 조선 후기의 문화8(금석문,서학,동학)을 배우겠습니다. 조선 후기 금석문 1개만 아시면 됩니다.

바로 백두산 정계비인데요. 그 원인으로는 청의 만주족들은 자신들의 발상지인 간도를 봉금지(들어오면 안되는 곳)로 설정했습니다.

그러나 오래 전부터 조선인들은 생활터를 찾아서 간도로 이주를 해왔는데요. 이 때문에 자주 분쟁이 발생하자 청의 관원들과 조선의 관원들이 백두산 부근을 답사하고 국경을 정해 비석을 세웠는데 그 비석이 백두산 정계비입니다.

(왼쪽)백두산,(오른쪽)백두산 정계비 백두산 정계비의 내용에는 "오라총관 목극등이 황제의 뜻을 받들어 변경을 답사해 이곳에 와서 살펴보니 서쪽이 압록이 되고 동쪽은 토문이 되므로 분수령 위에 돌을 새겨 기록한다. 강희(청의 연호를 사용해야하는 조선이기에 당시 청의 황제인 강희제의 이름을 이용한 연호)55년 5월 5일"이 있습니다.

이 비석은 숙종때 세워졌으며 이때부터 간도는 조선의 영토로 인정받았습니다. 서학(천주교)은 17C에 청나라의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