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쇄원, 붉은색으로 표시된 건축물이 광풍각이다. 광풍각 조선 중기 학자 양산보(1503-1557)는 기묘사화로 인해 그의 스승인 조광조가 죽은 후 고향으로 돌아간 후 정원과 집을 짓고 살았는데, 그 이름이 소쇄원이다.
현재 소쇄원에는 광풍각과 제월당, 두 동의 건축물이 남아 있다. 1536년 경 처음 지어진 광풍각은 1597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614년 양산보의 손자, 양천운(1568-1637)이 고쳐지었다. 기묘사화 : 1519년, 중앙 정치를 주도한 훈구파에 의해 조광조를 비롯한 신진사대부들이 숙청된 사건 광풍이라는 이름의 뜻은 '해가 뜨며 부는 바람'이며, 현판은 성리학자인 송시열(1607-1689)이 쓴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양산보는 제월당에서 책을 읽다가 손님이 오면 광풍각으로 나와 이야기를 나눴다고 하니, 소쇄원 안에서 광풍각은 사랑채의 기능을 한 것으로 보인다. 문화 해설사의 설명을 듣거나 온라인 검색을 하면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이런 내용들은 분명 흥미롭고 ...
원문 링크 : 소쇄원의 광풍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