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작은 초가집에서 시작된 기적 1909년 가을, 대구 남성정의 작은 초가집에 20여 명의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들었다. 캐나다에서 온 젊은 의료선교사 아처볼드 그레이 플레처(Archibald Grey Fletcher)가 마련한 이 작은 공간이 바로 애락원의 시작이었다.
당시 한센병은 '천형'이라 불리며 사회로부터 완전히 격리되어야 하는 질병이었지만, 플레처는 이들을 단순히 격리하는 것이 아니라 치료하고 사랑으로 돌보고자 했다. 플레처는 어머니의 신앙적 영향으로 의료선교사의 꿈을 품고 1908년 미북장로교 해외 선교회에 의해 임명되어 한국에 왔다.
그는 "나는 단순히 병을 고치는 의사가 아니라, 영혼을 구원하는 선교사가 되고 싶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소명을 분명히 했다. 이러한 그의 신념이 애락원을 한국 기독교 의료선교사에 길이 남을 모범 사례로 만든 원동력이었다. 1914년, 애락교회 창립과 복음의 뿌리 1914년 1월 11일, 애락원 부속 교회로 애락교회가 창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