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막 시작되던 4월 중순, 나는 짐을 싣고 청주로 내려왔다. 서울보다 느리게 흐르는 공기와 낯선 이 도시의 익숙한 이름 하이닉스가 새 출발의 상징이 되었다. 청주에서의 하루는 단순한 현장을 넘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의 연속이었다. 처음 배정받은 곳은 작은 개보수팀이었다. 오전 6시, 원룸에서 자전거를 끌고 출근했고 시간은 늘 부족했지만 동료들과 맞춰 일하는 사이 이 도시가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작업 중에 만난 M15X 팀의 동료는 여기의 일감이 많고 사람도 많아 단가가 괜찮다고 말했다. 야간 근무도 드물지 않다며 피곤함 속에 자부심이 스쳤다. 휴게실에서 만난 P&T3의 동료도 비교적 깔끔하고, 줄 선 시간도 짧다고 했다만 라인이 버티면 힘들어지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무엇이 더 낫다고 판단하기보단 어디서 누구와 일하느냐가 더 중요한 법이었다. 청주라는 도시의 속도에 맞춰 나는 점점 달라지고 있었다. M8 라인은 조용하고 안정적이지만 개보수는 많아 루틴이 강하게 돌아간다 했다. 이 말들을 들으며 오늘의 나를 구성하는 건 바로 환경과 팀 분위기, 그리고 하루를 얼마나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느냐다라는 결론에 다가갔다. 청주에서의 생활은 단순히 공사판에 발을 담그는 일이 아니라 수십 개의 작은 이야기들이 오가고 이름 없는 이들이 묵묵히 하루를 쌓아 올리는 현장이었다. 그들이 만들어낸 공간 속에서 내가 하나의 점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은 자랑스러웠고, 이 도시의 중심처럼 느껴졌다.
지금도 복대동 원룸에서 자고 가끔은 봉명동의 국밥을 먹는다. 며칠 전엔 충북대 쪽 원룸을 알아보며, M15X에서 일하던 동생이 이번엔 P&T3로 옮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음 계약이 끝나면 나도 그쪽으로 옮겨볼까 생각하기도 한다. 단가나 공제도 중요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오늘 하루를 버텨낼 수 있는 체력과 마음이다. 이 도시의 속도에 맞춰 나도 조금씩 달라져 가고 있었다. 청주에서의 일은 이처럼 작은 이야기들이 모여 하나의 큰 현장을 이루는 과정이었고, 그 안에서 내가 존재하는 것이 스스로 자랑스러운 경험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