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까지 물리학자들은 자연의 법칙이 좌우 대칭, 즉 패리티를 보존한다고 믿었다. 거울에 비친 현상도 실제처럼 가능해야 한다는 이 믿음 아래 전자기력과 중력, 강한 핵력은 패리티를 보존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양전닝과 이정다오는 약한 핵력에서 패리티 보존이 반드시 성립하는가를 의심했고, 직접적인 실험 증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패리티가 보존될 수 있는가를 검증할 실험 방안을 논문으로 제시했다.
청수 우의 실험으로 패리티 붕괴의 증거가 확인되었다. 코발트-60 핵의 베타 붕괴에서 전자 방향의 비대칭이 관측되었고, 핵 스핀 방향과 같은 방향으로의 전자 방출이 비슷한 비율로 나타나지 않았다. 약 40%의 비대칭으로 패리티 보존은 약한 핵력에서 성립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자연은 좌우 대칭이 아니라는 충격적 사실이 입증됐다. 이 결과는 물리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고, 파울리 등 동료들의 반응도 커다랗게 나타났다.
이로써 1957년 노벨상은 양전닝과 이정다오에게 수여되었다. 실험적 확인이 빠르게 이뤄졌음이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청수 우는 실험자였으나 노벨상 수상 명단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패리티 붕괴의 발견은 약한 핵력의 왼손잡이 성질을 포함하는 전기약력 이론의 탄생과 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후 약한 핵력의 특성은 V-A 이론, 아이소스핀 구조, 글래쇼-살람-와인버그 모형으로 정리되며, 전기약력의 통일 이론이 자리 잡고 힉스 메커니즘의 자발적 대칭 깨짐으로 왼손잡이 성질이 입자들에 실제로 작용하는 것이 확인됐다. 1964년 CP 위반 발견과 1980년 노벨상 수상자들까지, 패리티 위반의 여정은 물질-반물질 비대칭과 우주의 기원 이해로 확장됐다. 중성미자의 진동과 질량 발견은 패리티 위반의 후손으로 이어져 왼손잡이 중성미자와 오른손잡이 중성미자의 존재 가능성까지 거론되었다. 양과 이정다오의 초기 제안이 없었다면, 이 모든 진전은 훨씬 늦어졌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