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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정해져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황경신)

 이미 정해져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황경신)

비가 벽에 걸려 있는 시계로 눈길을 준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나도 시계를 본다.

자정이 넘었다. 에이와 함께 있으면 시간을 확인하는 건 언제나 내쪽인데.

"일어날까?" 비의 입에서 일어나자, 라는 말을 듣기 싫어서, 내가 먼저 이야기 한다.

"그럴까?" 비의 대답에, 나는 금세 내가 뱉은 말에 대해 후회한다.

가방을 챙기는데, "조금 더 있자." 비가 다시 말한다.

내 기분은 순식간에 바뀐다. 비의 말 한마디에 슬퍼하고 기뻐하는 나 자신이 참 가엾다, 라는 생각이 동시에 든다.

비는 절대 내게 양해를 구하지 않는다. 너는 어떻게 하고 싶니, 같은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자기가 더 있고 싶으면 더 있는 거고, 가고 싶으면 가는 거다. 나는 비의 말에 따를 뿐이다.

그건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정해져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 황경신 - 모두에게 해피엔딩 모두에게 해피엔딩 황경신 소담출판사 2003.0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