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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악의 문제 / 『사랑과 멸종을 바꿔 읽어보십시오』, 유선혜

 [詩] 악의 문제 / 『사랑과 멸종을 바꿔 읽어보십시오』, 유선혜

애매한 시간에 깨면 그제야 창문을 열어둔 채로 잠에 들었다는 걸 알게 된다. 불빛이 나간 전자시계의 화면이 보이지 않는다.

비행기가 지나가는 소리가 가까워진다. 조개 속에서 들리는 허무한 파동과 비슷하다.

어떤 바다를 건너온 걸까, 비행기에 타고 있는 어린 신은? 초록색 간판, 공업 도시, 몰려가는 구름, 절뚝이는 개......

신은 인간과 인간이 아닌 모든 것을 동그란 창밖으로 로장난스럽게 쳐다본다. 팔을 뻗을 힘이 없다.

내 몸에서 빠져나간 것. 몇 밀리그램의 수분과 토사물.

아무것도 가둬두지 못하는 내 영혼을 눈으로 보고 싶다. 모든 목소리가 성긴 구멍 사이로 흘러내리는 쓸모없는 그물.

이제는 내버려둔 창문을 닫아야 하는데. 거봐, 신이 이미 내 방을 발견했잖아.

페인트가 벗겨진 창틀을, 잔뜩 어긋나서 날파리가 드나드는 방충망을. 오랫동안 빨지 않은 수건들이, 김빠진 제로콜라가 담긴 페트병이,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피 묻은 팬티가, 혼자 마시고 구겨놓은 수입 맥주 캔이, 반납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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