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8월, 경상남도 남해의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난 이채윤 소년은 평범한 시골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손재주가 남달랐죠.
광성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금성사(지금의 LG) 부산공장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는데, 여기서 '기술'과 '제조'의 맛을 제대로 봤습니다.(여기서 손기술을 재대로 익혀다고 봅니다) 28살 되던 1978년, 과감하게 회사를 그만두고 비닐봉지 장사로 창업했습니다.
이름은 아내와 자신의 성을 합쳐 '리노(Leeno)'로 지었어요. "우리 부부 합치면 리노!"
라는 로맨틱한(?! ) 네이밍이었죠.
처음엔 비닐봉지, 헤드폰 부품, 카메라 케이스 같은 잡다한 플라스틱 제품을 만들며 먹고 살았습니다. 1980년대 중반, 운명의 전환점이 왔습니다. 당시 한국 반도체 산업은 검사 장비용 테스트 핀(프로브 핀)과 소켓을 100% 외국(주로 일본)에서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어요.
가격은 비싸고, 납기는 느리고, 품질은 들쑥날쑥. 이채윤은 "이걸 우리가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고 ...
원문 링크 : 리노공업 이채윤 대표의 인생역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