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카니발 계약서에 사인하기 직전, 대학 동기가 큰맘 먹고 뽑았다는 포르쉐 카이엔 E-하이브리드를 타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솔직히 핸들에 박힌 포르쉐 마블 크레스트를 보는 순간 이성이 마비되더라고요. 동력 성능이나 하차감은 말할 필요도 없죠. 동네 어린이집에 애들 데리러 갈 때 사람들의 시선이 꽂히는 그 짜릿함은 분명 돈값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주말에 이 친구네 가족이랑 같이 나들이를 가보니 처참한 현실이 드러나더라고요. 트렁크 용량이 600리터가 채 안 되다 보니, 디럭스 유모차 하나 넣으면 끝입니다. 애들 기저귀 가방, 보냉백, 낮잠 이불은 전부 뒷좌석 발밑이나 조수석에 구겨 넣어야 하더라고요. 심지어 룸미러로 뒤가 안 보일 정도로 짐을 테트리스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 환상도 와장창 깨졌네요. 타이어 교체 비용만 한 짝에 60만 원이 넘는다며 한숨 쉬는 동기를 보니, 패밀리카로 수입 프리미엄 SUV를 유지한다는 건 보통 각오로 되는 게 아니란 걸 깨달았습니다. 하차감을 얻고 무릎 연골과 통장 잔고를 내어주는 셈이죠. 결국 승합차는 싫고, 폼은 잡고 싶고, 짐은 많이 실어야 하는 아빠들이 선택하는 교집합이 대형 SUV더라고요. 최근에 나온 신형 팰리세이드(LX3)는 정말 작정하고 카니발 수요를 뺏어오려고 만든 차 같았습니다. 외관은 레인지로버 뺨치게 각지고 웅장한데, 실내 거주성은 이전 모델보다 훨씬 좋아졌더라고요. 특히 9인승 모델은 버스 전용 차로까지 탈 수 있으니, 명절 고속도로에서 꽉 막혀있을 때의 그 분노를 잠재워줄 최고의 솔루션인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예산이 있는 아빠들은 볼보 XC90 B6로 많이 넘어가시더라고요. '안전'이라는 절대적인 명분이 있으니 합리적인 소비를 한 것 같은 자기 위안도 되고, 심플한 북유럽 감성 디자인 덕분에 촌스럽지도 않고요. 다만 1억이 넘어가는 찻값과 극악의 서비스센터 대기 시간(엔진오일 가는데 한 달 전 예약은 기본이더라고요)은 감수해야 할 몫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커뮤니티와 주변 지인들의 여론을 수렴해서, 실용성과 하차감을 종합한 아빠차 계급도 30위를 표로 정리해 봤습니다. 반박 시 여러분의 말이 다 맞습니다. 순위 차량 모델 (분류) 실용성 하차감(허세) 1위 포르쉐 카이엔 (초격차 하이엔드) 2위 메르세데스-벤츠 GLS (회장님 아빠차) 3위 BMW X7 (다이내믹 CEO) 4위 레인지로버 보그 (영국 감성 끝판왕) 5위 볼보 XC90 (안전제일 스윗대디) 6위 제네시스 GV80 (강남 싼타페) 7위 아우디 Q7 (은근한 독일 감성) 8위 포드 익스플로러 (가성비 수입 대형) 9위 링컨 에비에이터 (미국식 럭셔리) 10위 테슬라 모델X (팔콘윙의 시선강탈) 11위 카니발 하이리무진 (공간의 지배자) 12위 팰리세이드 풀체인지 (가성비+웅장함) 13위 혼다 오딧세이 (잔고장 제로 미니밴) 14위 도요타 시에나 (하이브리드 연비왕) 15위 제네시스 GV70 (세련된 젊은 아빠) 16위 기아 쏘렌토 하이브리드 (국민 중형 SUV) 17위 현대 싼타페 (조선 디펜더) 18위 볼보 XC60 (기본기 탄탄) 19위 BMW X5 (드라이빙 재미 포기 못해) 20위 메르세데스-벤츠 GLE (안락함의 정석) 21위 기아 카니발 일반형 (국민 아빠차) 22위 테슬라 모델Y (IT 긱 감성 아빠) 23위 지프 그랜드 체로키 (아웃도어 상남자) 24위 렉서스 RX (고장 안 나는 게 최고) 25위 KGM 렉스턴 (튼튼한 가성비 프레임바디) 26위 르노 콜레오스 (하이브리드 가성비 픽) 27위 현대 투싼 (첫째만 있을 때 찰떡) 28위 기아 스포티지 (도심형 패밀리 콤팩트) 29위 폴스타 4 (전기차 힙스터 아빠) 30위 미니 클럽맨 (짐은 모르겠고 내 감성이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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