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은 중화인민공화국 창건과 현대 중국의 기틀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된다. 후난성 샤오탄의 부유한 농가에서 태어나 전통 유교 경전보다 신문물과 독서에 몰두하던 시절부터 사회 모순에 눈을 뜨게 되었고, 청말의 부패와 외세 침략에 대한 반제국주의 정서를 깊이 다졌다. 1911년 신해혁명 이후 군에 입대해 정치적 각성을 experience하고, 1921년 중국 공산당 창립대회에서 도시 노동자 중심의 혁명론을 벗어나 농민을 혁명의 주체로 삼는 노선을 제시했다. 이러한 현실주의적 접근은 당의 민심 확보에 결정적 계기가 되었고, 당 지도력 확립을 위한 대장정을 거치는 동안 생존 드라마를 써 내려갔다.
국공내전과 외부의 압력 속에서 마오쩌둥은 1만 킬로미터가 넘는 장정을 통해 생존력을 입증했고, 중일전쟁기에는 항일투쟁에 앞장서며 농촌 조직력을 바탕으로 세력을 확장했다. 1949년 천안문 광장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언하며 농민 중심의 토지개혁으로 지주 계급의 토지를 몰수해 봉건 잔재를 청산하려 했다. 그러나 대약진운동의 비현실적 목표와 관료 조작으로 수천만 명이 아사하는 참혹한 결과가 나타났고, 1960년대 말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문화 대혁명은 교육과 문화 시스템을 붕괴시키고 다수의 인재를 잃게 만들었다.
사후 중국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으로 경제적 도약을 이루었으나 일당 독재의 정치적 상징성과 구조는 여전히 남아 있다. 마오쩌둥의 사상은 중국식 사회주의의 근간으로 헌법에 남아 있으며 천안문 광장의 초상화는 국가 정체성의 핵심 요소로 기능한다. 긍정적 평가와 심각한 비판이 공존하는 복합적 인물로 남았으며, 오늘날의 중국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거쳐야 할 거울로 여겨진다. 분명한 것은 마오쩌둥이라는 거울을 통하지 않고서는 앞으로의 중국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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