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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고 혼자 죽기 — 고독사와 수치심

 혼자 살고 혼자 죽기 — 고독사와 수치심

혼자 산다는 것은 관계가 없는 삶이 아니라 고독을 기초 값으로 두고 삶을 조직하는 일이다. 죽음에 관한 질문을 오늘의 삶 속에 들여놓는 생활의 기술이자 역량에 가깝다. 수치심은 죽은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말은 고독과 죽음의 현장을 마주하는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남는 감정의 실체를 가리킨다. 혼자 먹고 자고 아프고 사람을 만나고 일하는 과정에서 고독하지 않는 법을 배우고, 실패를 통해 다시 배우며 생활의 형식을 다듬는 기술이 필요하다. 고독 회피가 아니라 고독하게 일상을 지키는 매년의 노력이 중요하다는 점이 강조된다.

푸코의 개념으로 보면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다루는 법이 바로 삶의 형식을 빚어내는 기술이다. 그러나 자기 배려의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누구나 혼자인 시대의 죽음은 타자를 호출하며, 죽음 이전의 돌봄과 이후의 마무리, 애도와 행정을 함께 수행하는 공공의 손길이 필요하다. 『필연적 혼자의 시대』가 강조하듯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공공복지 책임이 무덤 앞에서 멈춰 서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고독사가 발생한다면 남겨지는 수치심은 누구의 것인가가 문제로 남는다. 단지 냄새와 부패 때문이 아닌, 취약성을 직면하게 만드는 사회의 책임이 자리한다.

조르조 아감벤의 관점에 따르면 인간은 생물학적 존재인 조에와 사회적 주체인 비오스의 경계 위에 있다. 삶은 이 둘의 경계에서 형성되며, 배고픔이나 목마름, 그리고 정의감 같은 요소들은 몸의 순환과 분리될 수 없다. 고독사의 장면이 주는 노출은 단지 생물학적 사실의 드러남이 아니라, 비오스로 믿어왔던 삶의 구조가 조에 위에 놓여 있음을 드러낸다. 수치심은 죽은 사람의 것이 아니라 취약성을 사회가 어떻게 다루어 왔는가의 문제이며, 우리 모두의 책임으로 확산된다. 이제 남은 질문은 더 이상 ‘그냥 자연의 일’로 두지 않는 인간의 죽음을 사회 전체의 생태에 어떻게 귀속시키고, 혼자 죽더라도 피상적 수치가 되지 않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이다.

필자는 늙어가며 교차성의 관점에서 죽음과 삶의 관계를 탐구해 왔다. 죽음은 무엇인가가 아니라 죽음에 대한 사유가 무엇을 하는가에 관심이 있다. 이번 연재는 명사적 죽음의 보편성과 동사적 죽음 경험의 특이성을 교차적으로 탐색하면서, 삶의 여러 국면을 고유한 문장으로 새롭게 만나게 하려 한다. 여러 저서와 공저를 통해 드러난 돌봄과 인권의 시도들은 인간의 존엄과 사회적 책임이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지속적인 성찰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