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층의 비율은 시대에 따라 다르지만, 17세기에는 전체 인구의 10% 정도였다고 추정된다고 합니다. 이후 구한말에는 성씨가 확대되기 시작했습니다. 1909년에 일제가 민적법 (民籍法)을 시행하여 모든 사람이 성과 본을 가지도록 법제화했습니다.
이 때문에 양반들이 성씨를 팔거나 족보를 위조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성씨의 가격은 성씨의 명성이나 본관의 크기에 따라 달랐습니다.
김해 김씨나 전주 이씨와 같은 명문가의 성씨는 1000원에서 2000원 정도였고, 그 외의 성씨는 100원에서 500원 정도였다고 합니다 당시의 환율은 1원이 2엔이었습니다. 구한말에 성을 갖고 있었던 비율은 약 90% 정도였다고 합니다 성씨가 없는 사람들은 주로 노비나 무성 씨였습니다.
zibik, 출처 Unsplash 1. 조선시대 양반들의 삶 양반은 과거 시험을 통해 관리가 되어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 참여하였습니다.
관리가 되지 않은 양반은 글공부를 주로 하였고, 자기 땅의 농사는 노비와 소작농에게 맡겼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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