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개 - (2) [창화현에 포위된 현종] 1011년 2월 8일(음력 1010년 12월 27일) 지채문이 개경에 당도했다. 1011년 2월 9일(음력 1010년 12월 28일) 모든 신하들이 항복을 권했으나, 강감찬만이 홀로 남쪽으로 피난을 권했다. 그러자 지채문도 호송을 자처했다.
고려 현종은 이원(李元)과 최창(崔昌) 둘이 호송을 자처하겠다더니 여태 보이지 않는 것과 대조하여 강감찬과 지채문을 포상하며, 피난하기로 한다. 왕, 후비, 채충순과 관료들, 금군 50명이 이 날 밤으로 개경을 나섰다. 1011년 2월 10일(음력 1010년 12월 29일) 음력 12월 29일, 행렬이 적성현(積城縣) 단조역(丹棗驛)에 이르렀다.
무졸(武卒)인 견영(堅英)이 역인(驛人)들과 함께 활시위를 당겨 장차 행궁을 범하려고 하니, 지채문이 말을 몰면서 활을 쏘았다. 적도가 달아나 흩어졌다가 다시 서남쪽의 산으로부터 갑자기 튀어나와 길을 막자 지채문이 또다시 활을 쏘아 그들을 물리쳤다.
그날 저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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